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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경남 통영시 중앙동 충무데파트 인근에서 4·3 보궐선거에 출마한 같은 당 정점식 후보(오른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천득과 아사코의 인연도 아닌데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정점식 검사를 세 번쯤 만났던, 아니 본 것 같다. 친했던 적도 없으니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테다.

2003년 나는 법원 출입기자였고 그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맡은 수사 검사였다. 그가 송 교수를 심문하던 법정 풍경이 기억난다. 내가 피고인도 아닌데 정 검사의 심문을 듣고 있으면 머리 속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혔다. “80년대 저서에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표현으로 남한의 노동자와 농민을 지렁이에 비유한 것은 잘못 아닙니까?” “우리 농촌이 매우 비참한 것처럼 썼는데 이것은 88올림픽을 앞두고 남한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기 위해 쓴 글 아닙니까?” 너의 그 머리 속을 헤집어 놓고, 너의 행위가 아닌 생각을 심판하겠다는, 잘나가는 공안 검사의 우렁찬 목소리. 민주화 이후 세대인 나에겐 그 공판이 무척 충격이었다.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사실에 기반한 증거들이 오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공판 대부분이 ‘증거’나 ‘사실’은 없고, “너 이런 생각했지? 그러니 벌 받아야 돼”라는 식이었다. 송 교수는 2015년 10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법정에서 하도 비열하게 심문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정 검사를 회고했고, 항상 법정에 왔던 둘째 아들 린은 “내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 검사(정 검사)를 혼내주겠다”고 해서 변호사들이 말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치며 송 교수의 주요 혐의는 모두 무죄로 확정됐다. 한국 국적일 당시 북한을 오간 단순 잠입ㆍ탈출죄만 인정됐다.

여러 출입처를 거쳐서 2013년 다시 법조 기자가 됐을 때, 법무부 통합진보당 해산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이름을 올린 정 검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2015년에는 전국 검찰의 공안사건을 총괄하는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임명됐다. 승승장구였다. 그 사이 우연히 그를 길에서 한번 본 후, 세 번째 만남은 대검 공안부장으로 부임해 대법원 기자실에 들렀을 때였다. 그와 악수하면서 2003년이 생각나 움찔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을 떠났던 정 검사는 4ㆍ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돌아왔다. 국회에서 공안검사 출신은 어떤 효용성이 있을까. 분명 장점도 있을 텐데, 주로 ‘빨갱이’ 몰이에 중점을 둔 풍경만 보다 보니 내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 국회의원인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올해 5ㆍ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공청회를 국회에서 주최해 충격을 줬고, 2013년 반국가 활동을 한 사람에 대해 변호인의 접견 및 교통권을 제한하자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낸 적도 있다. 김진태 의원은 “박지원 의원의 뇌 주파수는 북한 당국에 맞춰져 있다”며 간첩 연상 발언을 했고, 국가정보원 증거조작 피해자로 확인된 유우성씨에게는 “간첩 맞다”고 한 적이 있다. 그의 기준이면 이들을 붙잡아 수사하면서 변호사도 만나지 못하게 해야 하는 셈이다.

또 한 명의 공안검사가 국회에 입성하는 것을 지켜 보며, 지긋지긋한 색깔론의 쳇바퀴가 새로운 엔진을 얻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수십년을 어떤 일을 해왔는지 외에 우리가 무엇으로 누군가를 판단할 수 있을까. 더구나 국회의원 1석의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경제ㆍ복지ㆍ노동ㆍ안전 분야 등 실질적인 전문가들이 너무나 필요한 곳이 국회가 아닌가. 장관급 인사 참사 등 문재인 정권에 분노하거나 실망한 여론이 높다고 하는데, 분노에도 책임이 따른다. 제대로 된 대안세력을 키우는 에너지가 되야 하는 책임 말이다. 바른미래당과 같은 대안적 보수세력이 선거 때마다 수구적인 한국당에 참패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면, 대안세력에 햇볕과 물을 주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의 수준인가 싶다.

이진희 기획취재부 차장 river@hankookilbo.com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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