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피해자ㆍ유족ㆍ환자단체 등 기자회견서 촉구
“아들이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가 과다출혈로 뇌사 상태에 빠졌어요. 49일간 연명치료를 받다가 사망했죠. ‘14년 무사고의 자부심’이라고 광고하던 성형외과는 자기들 책임이 아니니 치료받던 대학병원을 상대로 소송하라고 하더군요.”
2016년 10월 26일 아들을 잃은 어머니 이나금씨는 성형외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서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수술을 맡겠다던 유명 의사는 수술 중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옆 수술실로 빠져나갔다. 수술실을 여러 개 열어놓고 동시에 수술을 진행하는 이른바 ‘공장형 수술’이었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지혈이 되지 않는데도 간호조무사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수술실을 나가버렸다. 전문 인력이 아닌 간호조무사는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휴대폰을 만지거나 화장을 고치기까지 했다.
이 영상을 토대로 성형외과의 과실을 밝혀낸 이씨는 이후 수술실 CCTV 의무화에 앞장섰다. 이씨는 의료사고 피해자ㆍ가족ㆍ유족ㆍ환자단체가 18일 국회에서 가진 ‘수술실 환자 안전과 인권을 위한 CCTV 설치 법제화 촉구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의료사고가 났을 때 진실을 밝히기 위해, 좋은 의사 나쁜 의사를 가려내기 위해 수술실에 CCTV는 꼭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술실 CCTV 설치ㆍ운영 법제화 요구는 지난해 5월 부산의 한 정형외과 의원에서 수술 중 환자가 뇌사에 빠진 사건이 일어나면서 다시 대두됐다. 수술을 한 사람이 의사가 아닌 의료기기 영업사원이었다는 것이 CCTV 영상으로 확인되면서부터다. 의료사고 피해자ㆍ유족,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정문에서 수술실 CCTV 법제화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술실 CCTV 의무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응급실 안전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10개 넘게, 진료실 안전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20개 넘게 발의해 통과시켰거나 심의 중인 것과 정반대 상황이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 수술실 CCTV를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가 정부에 법제화를 건의한 것이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의료사고 피해자ㆍ유족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수술실 CCTV 법제화에 국회가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한의사협회가 영상 유출로 인한 의사와 환자의 심각한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수술실 CCTV 법제화를 반대하고 있다”면서 “응급실에는 CCTV 설치를 허용하면서도 유독 수술실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사면허제도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수술실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무자격자 대리수술을 근절시키는 것은 법제화 밖에 없다”며 “국회는 더 미루지 말고 우리의 수술실 CCTV 설치법 요구에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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