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점유했지만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몰락했던 핀란드 노키아가 부활했다. 통신장비 분야에서 세계 2위에 올랐는데, 기존 1위인 중국 화웨이(華爲)까지 제치겠다는 의지다. 미국과 중국이 화웨이를 두고 벌이는 갈등 상황을 이용하면 세계 1위 달성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냉전시기 유럽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을 취했던 핀란드의 외교전략을 ‘사이버 신(新)냉전’에서 재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현지시간) 노키아가 미ㆍ중과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3년 휴대폰 사업을 버리고 인터넷 라우터, 5세대(5G) 장비 등 통신장비 전문업체로 변신한 노키아는 지난해 7월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11억달러(약 1조2,486억원)어치 계약을 맺은 데 이어, 불과 3주 뒤 미국 티모바일과 35억달러 규모 계약에 합의하는 등 양국 모두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노키아는 특히 미국의 화웨이 견제로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미국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에 대해 미국 내 통신장비 판매를 금지한 데 이어 영국, 독일 등 동맹국가에 협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캐나다 등 5G 장비 설치가 시급한 국가는 화웨이 대신 노키아를 찾고 있다. 노키아는 이 같은 기조를 적극 활용,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반(反) 화웨이 조치 연장ㆍ강화를 위한 로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직ㆍ간접적인 도움도 이어졌다. WSJ에 따르면 화웨이를 견제하려는 미 의회 정보위원회 및 국가안보국 관계자가 직접 노키아 경영진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다. 2017년 노키아가 캐나다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와 15억달러짜리 계약을 맺을 때는 핀란드가 아닌 미국 수출입은행이 공동출자를 진행했다. 미국은 비(非)중국 통신업체가 해외에 장비를 판매하는 경우 원스톱(One-stop)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 대외 원조 기관 미국국제개발금융공사(USIDFC) 창설을 골자로 일명 '빌드 법안'에 서명하면서 노키아가 재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커졌다.

부활하는 노키아의 연도별 경영실적 및 예상치. 2019년 이후 매출액의 견조한 증가와 순이익 급증이 예상된다. 자료: 톰슨로이터

미국에서 이득을 취하면서도 노키아는 약삭빠르게 중국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과의 합작 투자를 통해 중국, 대만, 홍콩에 공장과 연구시설 6개, 직원 약 1만7,000명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중국 내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중국-핀란드 비즈니스 컨소시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리스토 실라즈마 노키아 회장은 2017년 중국 방문 당시 “중국과 핀란드 관계의 근간은 신뢰라고 생각한다”면서 중국 인터넷 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노키아 사업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 화웨이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화웨이 측은 “노키아도 중국 정부와 연계된 통신업체”라며 “미국 FCC가 화웨이와 노키아에 상반된 대응을 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키아는 이에 대해 “화웨이의 주장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거나, 노골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화웨이와 노키아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델오로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의 점유율은 28.6%였던 데 비해 노키아의 점유율은 17%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 화웨이 기조로 몰락의 상징이던 노키아가 부활의 계기를 맞게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노키아 연도별 매출액.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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