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시도 국익 위해 뒤엎은 미 참모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직언한 문재인 수석
문 대통령에겐 쓴소리하는 참모 안 보여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나라님의 한마디는 ‘하늘’이다. 한국에선 무한권력 재벌들도 벌벌 떤다. 그런 대통령 지시나 ‘말씀’이 참모에 의해 뒤집히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선 이런 일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놓고 ‘생중계’가 됐다.

라이브 중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북한에 대한 대규모 제재가 추가될 것이라는 재무부 발표를 철회한다”는 트윗을 날리면서 시작됐다. 전날 미 재무부가 북한과 거래한 중국 해운사 2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한다고 한 직후였다. 백악관은 처음엔 아직 발표되지 않은 대규모 제재의 철회를 지시한 것이라고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철회 지시 대상은 중국 해운사에 대한 제재였고, ‘미발표 대규모 제재’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전말을 전했다. 해당 제재를 대북 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한 내막도 드러났다.

눈길을 끈 것은 그럼에도 미 국무부가 중국 해운사에 대한 제재는 계속 유효하다고 분명히 한 대목이다. 대통령이 철회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측근들이 대통령에게 찾아가 “절대 안 된다”고 설득해 결국 제재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묵살되고 체면이 구겨지는 일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도 놀랍다. 대통령 말씀은 ‘씹혔지만’ 미국의 정책 일관성은 유지됐다. 우리나라였다면 대통령 지시는 앞뒤 안 가리고 바로 시행됐을 것이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네오콘의 상징적 인물인 볼턴 보좌관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상황도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 말이나 내뱉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수를 미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엔 대통령의 ‘말씀’에도 반대할 수 있는 원칙주의자와 직언을 서슴지 않는 참모들이 있고 결국 이들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더구나 이들의 충언은 트럼프 대통령도 살렸다. 실제 볼턴 보좌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결렬시킨 장본인이지만 그로 인해 ‘하노이 노딜’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여야로부터 모두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문재인 정부엔 이처럼 대통령에게 ‘노’(No)라고 직언하는 참모가 안 보인다. 정권이 잘못 가고 있을 땐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국민 정서상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장관 및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버젓이 추천하는 인사 참사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일말의 사과나 반성도 없는 청와대를 보면 낭패감이 들 정도다. 꼬일 대로 꼬여 답답하기만 한 북핵 문제와 외교ㆍ안보 분야도 마찬가지다. 결국 미국까지 날아가서 푸대접을 받고, 북한엔 오지랖 넓다는 욕만 먹는 동네북 신세가 됐다. 국민 자존심이 상처 났는데도 치유할 노력도 안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정책의 과속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민생 현장들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있는데도 “좋아지고 있다”는 생뚱맞은 발언을 접하면 절망감마저 엄습한다.

상황이 악화하는데도 그대로라는 건 아무도 뭐가 잘못인지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누군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은 채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역사에선 이런 참모들을 간신이라 했다. 이런 간신들은 주군조차 위태롭게 한다.

같은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06년 당시 이해찬 총리가 3ㆍ1절 내기 골프로 물의를 빚었을 때 민정수석은 대통령에게 ‘해임’ 결단을 촉구했다. 그 참모가 바로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물론 두 사람이 오랜 동지이자 친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도 크다. 지금 문 대통령에겐 이런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참모도, 문재인 수석처럼 민심을 그대로 직언하는 이도 안 보인다. 자기 편만 중용하는 것을 고집하니 이런 폐단이 생긴다. 이렇게 민심이 떠나면 정권은 오래갈 수 없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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