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용 중고 자전거 유입 경로 역추적해 보니
길거리ㆍ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자전거가 대부분
서울시 지난해 방치 자전거 1만7천여대 수거
16일 오후 1시경 인천 연수구 중고차수출단지 내 야적장. 각양각색의 자전거 수천 대가 종류별로 쌓여 있다. 대부분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등 해외 수출을 앞둔 중고 자전거들이다. 그중 일부는 프레임과 바퀴가 분리된 채 따로 정리돼 있었는데, 러시아 출신 수출업체 대표는 “컨테이너에 하나라도 더 실으려면 죄다 분리해서 부피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가량 야적장을 둘러보는 사이 두어 대의 트럭이 자전거 100여대를 더 내려놓고 사라졌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고 자전거, 도대체 이 많은 자전거는 다 어디서 왔을까? 자전거가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그 공급 경로를 추적해 보았다.
◇3시간 전: 아파트 단지에서 일괄 수거
이날 오전 10시경 1톤 트럭 한 대가 인천 서구 청라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서 있다. 트럭 운전기사는 광장에 줄지어 놓인 녹슬고 먼지 수북한 자전거 130여대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그는 폐자전거 수거전문 업체인 ‘S’무역 조모 대표. 그런데 점검을 마치고 적재함에 자전거를 싣는 그의 표정이 어둡다. 상당수 자전거가 고물상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낡고 훼손된 ‘폐(기)급’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대당 2,000~3,000원 선에 자전거를 매입한 그는 상태가 좋은 40여대를 먼저 골라 싣고 연수구 중고차수출단지로 향했다. 수출업체로부터 받은 대금은 대당 8,000~1만2,000원 선으로 ‘남는 장사’였지만 나머지 90여대의 ‘폐급’은 한 푼도 못 받고 고물상에 넘겨야 했다. 자전거 분리 작업이 번거롭고 고철 가격 또한 시원찮은 탓에 고물상이 입고를 거부해 어쩔 수 없었다. 조 대표의 트럭은 곧바로 수거를 의뢰한 다른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지자체도 폐자전거 공급 큰손
폐자전거 수거업체에겐 길거리에 버려진 자전거를 수거해 강제 매각하는 지자체도 주요 고객 중 하나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8명의 전담팀을 구성해 매일 순찰과 계고, 수거를 이어가고 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폐자전거 처리에 힘이 부칠 지경이다. 야외 활동하기 좋은 봄철로 접어들면서 대로변뿐 아니라 주택가 골목길 등에 방치된 자전거를 치워 달라는 민원까지 쇄도하고 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열흘 이상의 계고 기간 후 수거한 폐자전거를 보관소로 옮기는데, 2월 이후 수거된 수량만 500여대에 달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 수거한 방치 자전거는 총 1만7,255대로 2017년에 비해 약 7% 증가했다.
◇수거 전: 곳곳에 방치된 자전거
방치 자전거가 수거되기 이전으로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봤다. 서울 신도림역과 대림역, 구파발역 등 지하철 역사 주변이나 아파트 단지 내의 거치대를 살펴보니 심하게 녹슨 채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자전거가 흔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바람 빠진 타이어는 주저앉았고 안장 등 부품도 사라지고 없다. 바구니마다 쓰레기가 채워져 있거나 아예 광고물 게시대로 활용되는 자전거도 있었다. 이처럼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자전거는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거치대 이용 기회마저 빼앗는다.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단지 내에 쓰지 않는 자전거가 많아 주기적으로 수거 처리를 하고 있지만 그때뿐”이라고 말했다.
◇방치의 시작: 자전거와 함께 버려진 양심
공급 경로의 최상위에는 ‘양심 불량’ 또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쓰지 않는 자전거를 정식으로 폐기 처리할 경우 대형 생활폐기물에 해당하므로 2,000~5,000원가량의 배출 비용을 내야 하지만 아파트 단지든 전철역이든 거치대에 놓아 두기만 하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 때문에 이사를 가거나 낡은 자전거가 싫증이 날 때 어딘가에 세워 둔 채로 잊으면 그만이다. 수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력과 세금의 낭비 또한 내 알 바 아니다. 자전거 방치는 곧 쓰레기 무단 투기지만 번호판 등 소유주를 식별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니 과태료 부과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정든 자전거와 함께 버려진 시민의 양심은 오늘도 어느 야적장이나 고물상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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