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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R.H

입력
2019.04.1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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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화제가 된 어떤 뉴스를 보고 응답체로 이루어진 6연의 시를 썼다(‘현대시’ 5월호에 나온다). 먼저 1연에 진화 심리학자가 나와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끌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들은 동성애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 때문에 비정상적이거나 반자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프랑수아즈 에리티에가 책임편집을 맡은 ‘여자, 남자 차이의 구축’ (알마, 2009)에 한 편의 글을 실은 생물학자 피에르 앙리 구용은 이런 주장을 “인간이 종종 채택하는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시각”이라고 꼬집는다. 생물학자들은 450종의 조류와 포유류에게서 동성애를 발견했고, 영장류 동물학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보노보 원숭이의 동성애 형태를 확인했다. 공자그 드 라로크는 ‘동성애’(웅진싱크빅, 2007)에 이렇게 썼다.

“실제로 동물들에게도 동성애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고대부터 관찰되었다. 이런 사실은 18세기와 19세기의 박물학자들도 알고 있었지만, 이들은 당시 사회의 편견 탓에 이 같은 사실을 무시하거나, 또는 상궤를 벗어나는 기이하고 변태적이며 반자연적이고 비정상인 형태로 간주했다.” 진화 심리학자가 자연의 이치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정렬해 놓은 자연, 인간화된 우주의 모형이지 자연은 이성애를 설계하지 않았다.

그러자 3연에 목사가 나와 이렇게 반박한다. “70억 인류가 증거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지 않았다면 인류가 어떻게 번성했겠는가?” 얼핏 보기에 70억이나 되는 인류는 인간에게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성 밖에 없으며, 두 개의 성이 축복한 이성애의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바네사 베어드의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이후, 2007)에 잘 기술되어 있듯이 전통 사회에서는 결혼과 생식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배겨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남녀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와 반대로 양성애는 너무 흔해서 도리어 공개적으로 용인되었다. 그 결과 무수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도 아이를 낳았으니 70억이 전적으로 이성애의 증거라고 말할 수 없다. 동성애자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두 명, 양성애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과 프랑스와즈 사강은 각기 세 명과 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자 5연에 철학자가 나와 이렇게 말한다. “당신 말이 맞기 때문에 문명은 억압을 필요로 하지. 이성애라는 질병으로 이성애를 설계해 놓지 않는 자연을 극복해야만 해.” 이제야 바로 실토하는군. ‘호모포비아’(사월의책, 2019)에 한 편의 글을 실은 독일의 대표적인 문화이론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인간의 성은 “제각기 모두 다르며 개별적인 인간만큼이나 많은 성들이 존재”한다면서 70억 인류는 곧 “70억의 ‘변태’”를 뜻한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자연이라면 강요된 이성애야말로 도착일 것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역사는 신화시대부터 면면히 계승되면서 전통 사회가 관용해 온 동성애와 제3의 성(=間性)을 억압하고 퇴치해온 역사다.

동성애혐오증(호모포비아)이 전통 사회와 거리가 먼 문명화 현상이라는 것은 아프리카ㆍ동남아시아ㆍ라틴 아메리카 등의 제3세계 국가에서 동성애자를 탄압할 때 ‘서구에 대한 저항=반 동성애’를 명목으로 내세우는 것에서 확실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성애혐오증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제3세계가 서구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서구로부터 학습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는 왜 동성애혐오증을 발달시켰을까.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이 가족의 성을 통제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유지하고 관철하고자 하며, 이는 다시 동성애나 순응적이지 않은 성들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족 정책은 국가가 순응적인 개인들을 훈육시키고 차출해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당연이 이들 중 일부는 군인들이 되었다.”

‘R.H’라는 제목을 가진 시 속의 화자는 철학자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다양한 성을 타고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성애라는 억압과 질병만 강요하는 사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누군가로 하여금 마약에서 위안을 구하도록 만든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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