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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이후 자코뱅 혁명가들은 부르봉 왕가의 교회를 팡테옹으로 바꾸고, 그곳을 공화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을 기린 정치종교의 신전으로 만들었다. 물질적 보상으로 움직인 중세 용병과 달리 근대 이후 전쟁은 국가에 헌신하려는 시민의 자원입대가 주축을 이뤘다. 공화국은 전쟁의 대량살상 실상을 숨기고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선전할 필요가 있었다. 역사학자 조지 모스는 전사(戰死)를 신성화하는 ‘전사자 숭배’의 신화가 프랑스혁명과 함께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10일 서울시는 용산구 효창공원을 2024년까지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효창공원에는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등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이 있다. 효창운동장, 대한노인회, 고 육영수여사 경로 송덕비, 원효대사 동상과 어린이 놀이터 등도 있다. 요컨대 정체성이 뒤섞여 역사적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장소다. 재단장을 해서 접근성 높인 명소로 만들겠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보도자료에서 어린이대공원(연간 이용자 934만명), 보라매공원(835만명), 현충원(223만명)과 비교하며 효창공원(33만명)을 ‘시민에게 외면 받는 공간’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같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상 속 기념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는 홀로코스트 같은 학살 희생자가 아니다. 각지에 흩어져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독립운동가 묘역에 어떤 방식으로 국가 차원의 예우를 갖출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단지 7인의 묘가 한 곳에 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 기념공원’을 그것도 단기간에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관(官) 주도의 영웅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원화 사업 밑에 깔린 영웅사관이 개발독재시대 논리를 답습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지만, 국가적 기억 공간을 조경 사업하듯 접근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견 수렴의 주체, 자금 모금 과정, 개관 후 관리까지 희생자 추모공원과 독립운동가의 그것이 같은 방식일 수 없지만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의 설립과정을 보자. 1988년 기자 레아 로시, 역사학자 에버하르트 예켈이 유대인 추모 기념물 건립을 제안하며 1만명 서명을 받았다. 역사가, 인류학자, 박물관 전문가, 건축가 등이 대대적으로 참여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기념관 설립이 최종 승인된 건 1999년이다. 이듬해 첫 삽을 떴지만 비석 제작 업체가 나치 관련 기업으로 밝혀지며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인 2005년, 기념관 건립이 처음 제안된 지 17년 만에 문을 열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비석 2,711개가 있는 이 추모공원의 연간 이용자 수는 약 50만명이다.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단은 올 3월 시의회에 낸 업무보고서에서 효창공원 리모델링을 ‘범정부적 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작년 11월 국가보훈처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관련 공청회는 23차례 모두 보훈·축구단체 관계자, 독립유공자 후손, 효창공원 일대 주민자치위원회를 대상으로 열었다. ‘여론 수렴’을 위해 올 초 보훈·축구 분야 전문가 100인, 서울시민 300인에게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그나마 몇 부가 회수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올 2월 임명된 사업단장은 대규모 도시개발, 설계분야 전문가다.
‘21세기 동아시아의 기억 문화는 국가가 호국영령을 제사함으로써 정치종교의 차원으로 승화한 전사자 숭배의 정점을 보여준다.(...)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의 죽음을 특권화하고 제사하는 20세기의 국민국가적 제의는 동아시아의 기억 문화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임지현 ‘기억 전쟁’)
가장 큰 문제는 ‘3·1운동 100주년’에 맞춘 이런 기억의 정치가, 일반의 무관심 속에 세금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윤주 지역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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