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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르완다 제노사이드 25주년을 맞아

입력
2019.04.1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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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대학살 25주년을 맞아 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에서 르완다 교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르완다 대학살 25주년을 맞아 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에서 르완다 교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년전인 1994년 4월 6일은 아프리카 중부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20세기 후반 최악의 종족 학살 행위가 시작된 날이다. 탄자니아를 방문 중이던 하비야리마나 당시 대통령이 종족 간 갈등으로 야기된 내전 수습을 위해 급히 귀국 중이었는데, 대통령기가 수도 키갈리 상공에서 의문의 피격을 받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급진 세력의 소수 종족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시작되었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르완다 전체 인구 700만명 중 10% 이상이 피살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국제 사회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사이 반군 세력이 무력으로 집권 세력을 축출하면서 제노사이드는 르완다 사회를 모조리 붕괴시킨 채 100일만에 끝나게 된다.

제노사이드 세력이 축출된 이후 르완다는 온건 세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했고, 정치적 안정이 확보된 1999년 국민통합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국민 통합과 화해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르완다 정부는 매년 4월 6일부터 7월 4일까지를 제노사이드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이 기간에는 공공장소에서 가무가 금지되며 학교, 직장, 마을 단위로 추모행사를 가진다. 올해는 제노사이드 25주년인만큼 예년보다 다양한 추모행사가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지난해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중장기 자문단으로 르완다 국민통합화해위원회에 파견되어 자문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난 1년간 보고 들은 제노사이드의 상처 치유를 위한 르완다 국민들의 노력을 간략히 소개해본다.

그 동안 많은 국제조사단에서 제노사이드의 본격적 계기가 된 하비야리마나 대통령 피격 사건의 배후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벌였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대량학살을 계획하고 집행한 세력을 재판하기 위해 르완다 국제형사법정이 탄자니아 아류사에서 1995년부터 2015년까지 활동하며 93명을 기소했고, 이 중 62명이 형을 받았다. 르완다에서도 제노사이드 가담자를 처벌하기 위해 가차차 법정을 설립해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약 200만건을 처리했다.

동시에 르완다 국민들은 제노사이드의 아픔을 딛고 지난 20여년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거버넌스 부문에서도 아프리카의 모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성평등 부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난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하원의원(80명)의 61%(49명)가 여성으로 구성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또, 르완다 국민통합화해위원회는 국민 통합 및 화해에 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르완다 화해 바로미터(Rwanda Reconciliation Barometer)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르완다 국민들의 화해 지수는 92.5%로 2010년(82.3%)보다 크게 개선됐다.

이와 함께 르완다 국민들이 제노사이드의 아픔을 극복하는 데는 국제 사회의 지원 또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25년이 지난 오늘에도 선진국들의 정부 차원의 개발협력뿐 아니라 국제평화, 화해, 제노사이드 방지 문제 등에 관심 있는 NGO 활동가들과 학자, 학생들이 르완다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코이카를 통해 르완다를 아프리카 지역 주요 개발협력 대상국으로 선정하고 교육, 농촌, ICT 부문에서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다수의 NGO 단체가 빈곤 해소, 보건,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코이카 봉사단원을 비롯한 수십 명의 봉사단원들도 각지에서 르완다 국민들의 제노사이드 아픔을 치유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제노사이드 25주기를 맞아 르완다 국민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들이 눈처럼 녹아 내리고 르완다가 진정으로 천 개의 언덕에 자리한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신용기 한국국제협력단 제 17기 중장기 자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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