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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대관식 열린 노트르담은 프랑스의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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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대관식 열린 노트르담은 프랑스의 국사 교과서

입력
2019.04.16 17:54
수정
2019.04.16 23:04
2면
0 0

‘장미 창’ ‘가시면류관’ 등 걸작 다수

마크롱 “재건 위해 전세계 모금 운동 펼칠 것”

15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첨탑과 지붕이 붕괴됐다. 사진은 2018년 6월 26일 촬영한 성당 내부 모습.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15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첨탑과 지붕이 붕괴됐다. 사진은 2018년 6월 26일 촬영한 성당 내부 모습.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적은 없다”.

영국 BBC는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한 15일(현지시간) 이 건물이 지닌 의미를 이같이 요약했다. 프랑스대혁명 100돌을 맞은 1889년 세워진 프랑스의 또 다른 상징 ‘에펠 탑’은 130년 밖에 되지 않은 반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856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인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은 ‘국사 교과서’와 같은 곳이다. 카톨릭에서 대성당은 교구(敎區)를 관장하는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이다. 여기에 프랑스어 노트르담(Notre-Dame) 즉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노트르담 대성당은 대혁명 이전까지 카톨릭 국가였던 프랑스 정치의 중심이었다. 1302년 필리프 4세는 전국 삼부회를 처음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었으며, 영국 왕 헨리 6세의 즉위식(1431년)과 잔 다르크의 사형 후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재판(1455년), 프랑스 공주 마들렌의 결혼식(153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1804년) 등이 이곳에서 거행됐다.

이 같은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유럽 고딕 양식이 집적된 걸작으로 꼽힌다. 1163년 프랑스 경제ㆍ문화의 중심지로 파리를 부각시키려 했던 루이 7세의 명령으로 센강 시테섬에 있던 교회를 허물고 건설을 시작, 1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 가로, 세로가 각각 48m와 128m, 탑의 높이는 69m인 바실리카 건축물이다.

이 성당 중앙 구조물 외벽에 덧댄 아치형 지지구조 즉, ‘플라잉 버트레스(버팀도리)’는 고딕 양식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이다.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전지전능한 신성(神性)을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건축기법 덕분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정면 출입구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의 창'.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트르담 대성당 정면 출입구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의 창'.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건축물 자체도 빼어나지만 내부 구조물과 성당에 보관됐던 예술품들도 프랑스의 국보로 평가된다. 가장 유명한 게 ‘장미 창’으로 불리는 3개의 스테인드 글라스다. 원형의 ‘장미 창’은 고딕 구조물에서 자주 보이는 데 노트르담 대성당의 것은 그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가시면류관’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작품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 썼던 면류관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를 원형의 다발에 엮어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밖에 13세기 프랑스 왕이 입었던 그리스ㆍ로마식 복장인 ‘튜닉’과 ‘대형 파이프 오르간’, ‘성 십자가’, ‘거룩한 못’ 등 수많은 예술품이 이 건물 안에 있었다. 미국 CNN에 따르면 베드로 성인의 순교와 바울의 개종 등 신약 성경 ‘사도행전’의 주요 장면들을 표현한 그림 76장과 1648년 제작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초상화도 노트르담 대성당이 간직하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관 중이던 가시면류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관 중이던 가시면류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단 가시면류면과 튜닉 등 다수의 유물들은 화재 발생 뒤 파리 시청으로 옮겨진 상태다. 16일 로이터 통신은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물들이 차후 루브르 박물관으로 다시 옮겨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건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낸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통해서다. 15세기 프랑스 교회의 타락과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서 종지기 콰지모도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1,200만~1,4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 원동력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자긍심 자체였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수습에 나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재건’을 약속하며, 프랑시 국민들의 허탈감을 상쇄하는 데 집중했다. 당초 이날 오후 8시 조세 부담 완화 대책 등과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었던 마크롱 대통령은 화재 발생 보고를 받은 직후 현장을 방문했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장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은 “끔찍한 비극”이라고 침통해 하면서도 “소방대원들의 노력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말했다. 대성당 지붕과 첨탑 등이 무너져 내렸으나 2개의 종탑과 전면 석회석 구조물은 온전하다는 뜻이다. 이어 그는 “슬픔이 우리 국민을 뒤흔든 것을 알지만 오늘 나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면서 “대성당 재건을 위해 내일부터 국경을 넘어 국가적 모금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는 마크롱 대통령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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