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회사 가기 싫어’ 다큐촬영팀 따로 찍어 편집 장르 파괴
tvN ‘막영애’엔 4~5분 마다 자막… “유튜브 세대 잡자” 파격 늘어
직장인이 꼽은 사무실 최악의 자리는 어디일까. 상사와 가까운 자리가 1위(36.1%)란다. 부장과 눈이 마주쳐 바로 얼굴을 돌리는 과장의 모습 위로 설문의 구체적 정보가 그래픽으로 뜬다. TV 뉴스 장면이 아니다. 지난 9일 첫 방송한 KBS2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에 담긴 장면. 이 드라마에는 배우가 아닌, 실제 풍수지리 연구원장의 사무실 풍수 관련 언급까지 나온다.
드라마에 뉴스에서나 볼법한 설문 결과 그래픽에다 전문가 인터뷰라니. 직급마다 다른 사무실 파티션(칸막이) 높이를 수치로 보여준 뒤 회사 내 공간이 내포한 권력 관계를 언급하는 과정은 영락없는 다큐멘터리 화법이다.
장르를 종잡을 수 없게 하는 실험은 곳곳에서 계속된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극 중 인물의 ‘속마음 인터뷰’는 드라마의 환상을 깬다. 최영수(이황의) 부장이 “오랜 시간 동안 경력과 능력, 실력을 쌓으면서 이 자리를 차지했다”라고 말하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 영화 ‘극한직업’의 명대사 패러디가 절로 떠오른다. 이건 드라마인가 다큐멘터리인가.
◇다큐멘터리처럼 찍는 드라마
종잡을 수 없는 장르 파괴에 시청자도 놀란 눈치다. ‘회사 가기 싫어’ 시청자게시판엔 ‘중간 중간 용어 설명이라든지 무슨 이런 드라마가 다 있지!’(곽**), ‘리얼 다큐 같으면서 예능 같기도 해 전개가 참신하다’(유**) 등의 글이 올라왔다.
실험은 칸막이 허물기에서 시작됐다. ‘회사 가기 싫어’는 ‘추적60분’을 제작한 조나은 시사교양국 PD가 연출한다. 드라마팀과 다큐멘터리팀이 각 형식에 맞는 촬영을 따로 해 하나의 드라마를 만든다고 한다. 촬영 방식도 기존 드라마와 180도 다르다. ‘회사 가기 싫어’는 카메라 앵글에 맞춰 배우를 찍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조 PD는 “드라마를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듯 찍는다”고 말했다. 낯선 촬영 방식은 배우들에게도 도전이다. 신입사원 노지원 역을 맡은 배우 김관수는 “마치 연극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성 편견 차단 나선 드라마 ‘자막’
드라마의 형식 파괴는 방송가의 요즘 추세다. 2007년부터 12년째 시리즈로 이어진 tvN 드라마‘막돼먹은 영애씨’엔 4~5분 마다 예능 프로그램처럼 자막이 등장한다. 성우 내레이션도 곳곳에 들어간다. 영상만 보면 심심할 수 있는 대목에 예상치 못한 자막과 소리로 재미를 주려는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잘 쓴 자막 하나, 열 배우 부럽지 않다. 지난 5일 방송된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7’에선 중소기업 부장 라미란(배우가 실명으로 등장한다)이 사장인 정보석 차를 서툴게 모는 장면에서 ‘여자라 운전 못하는 게 아니라 미란이 못 하는겁니다’란 자막을 내 성 편견을 차단하고, 육아휴직 중인 이승준이 술을 마신 뒤 아침을 맞는 상황에서 ‘모닝콜 꾀꼬리가 불러드립니다 드르렁’이란 자막을 달아 웃음을 준다. 한상재 PD는 “(요즘) 선거 방송도 예능처럼 제작하지 않나”라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장르의 혼종으로 새로움과 재미를 주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7’을 제작하는 5명의 작가는 영상 편집본을 본 뒤 자막을 추가로 쓴다.
◇시체를 묻어? 시청자가 이야기 결정
드라마의 형식 파괴는 시청자 시청 패턴 변화에 따른 결과다. 인터넷 시대에 1~2분짜리 동영상 소비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짧은 호흡의 콘텐츠를 선호한다. 70여 분 분량의 드라마에 뉴스나 예능적 요소를 활용하면 지루함을 덜 수 있다. 장르 변화로 분위기에 반전을 줘 순간 몰입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평론가인 박생강 소설가는 “드라마의 예능화는 유튜브 세대의 등장으로 인한 콘텐츠 제작 변화”라고 말했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예능과 뉴스 형식의 드라마 접목은 혼종에 익숙한 10~30세대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플랫폼 변화는 드라마의 형식 파괴를 부추긴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가 공개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게임 같다. 시청자가 이야기를 선택한다. 사람을 죽인 뒤 ‘시체를 묻는다’ ‘토막 낸다’ 중 컴퓨터 마우스로 어떤 보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청자와 상호작용으로 이야기가 결정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넷플릭스에 이어 유튜브도 인터렉티브 콘텐츠 제작을 추진할 예정이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20년 째 일하고 있는 한 PD는 “OTT의 영향력이 커져 게임 같은 드라마 제작은 더욱 활발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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