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을 위한다더니, 민심만 잃었다.”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빈곤층 주택 개조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일부 지역에서 낡은 집 외벽에 벽돌을 바르고 색을 칠해 겉만 그럴듯하게 바꿔 실적을 쌓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정작 주민들이 외면하면서 부실공사 오명만 쌓이는 형편이다.
중국 지린(吉林)성 타오난(洮南)시의 한 농촌마을. 파란색 강판 지붕을 얹은 벽돌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창문도 환하고 넓어 언뜻 화사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집안으로 들어서면 보기와는 영 딴판이다. 흙으로 된 내벽은 연기로 검게 그을렸고, 군데군데 갈라져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벗겨진 벽 아랫부분이 아예 내려 앉은 곳도 있었다. 비가 오면 지붕에 물이 새는 것은 물론, 한겨울에는 찬바람이 이불 속까지 파고 들어와 비닐로 덧대면서 겨우 버텼다고 한다. 한 주민은 “40년 넘은 마을의 흙집을 지난해 일괄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겉을 덧씌우는데 그치고 방안은 그대로 방치했다”면서 “새집이라지만 너무나 불안하고 위험해서 친척집에 얹혀살지, 내 집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오래된 집을 개조할 경우 1만5,700위안(약 267만원)의 보조금을 준다. 하지만 자비를 들여 공사를 먼저 끝낸 후에 검수를 받아야 한다. 이에 형편이 여의치 않은 대다수 주민들은 초기 비용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을 시공사를 선정해 일괄적으로 맡겼다. 그 결과 건설업자의 배를 불리고, 지방정부 예산을 축내는 사이, 도처에 엉터리 새집만 늘어난 셈이다. 공사 리베이트 의혹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도 한 방송사의 고발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묻힐 뻔했다.
빈곤퇴치는 중국 공산당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연중 최대 정치행사인 지난달 양회에서도 질적 성장 제고, 금융 리스크 방지, 환경오염 개선과 함께 4대 핵심 추진과제로 꼽혔다. 실제 중국 빈곤층은 연평균 1,300만명, 지난 5년간 총 6,800만명 이상 감소했다. 빈곤발생률도 2012년 10%를 웃돌았지만 이제는 3% 안팎으로 크게 줄었다. 중국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눈부신 성과다. 특히 중국 지도부가 누차 공언한대로 내년에 전면적 샤오캉(小康ㆍ편안하고 풍족한 생활) 사회로 진입하려면 절대 빈곤의 굴레에서 먼저 확실히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빈곤퇴치 사업의 허상이 드러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갔던 중국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에 지린성 당서기는 “엄중히 책임을 묻고 허위 주택 개조를 단호히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8개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합동 조사반도 꾸렸다.
등 돌린 민심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찬란하게 순항하던 중국의 빈곤구제 노력이 막판 결승점을 앞두고 시험대에 올랐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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