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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접는 금호… ‘몸집 확대ㆍ경영권 집착’에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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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접는 금호… ‘몸집 확대ㆍ경영권 집착’에 추락

입력
2019.04.16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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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전 회장, 아시아나항공 매각 의사] 

 대우건설ㆍ대한통운 무리한 인수 ‘승자의 저주’… 사실상 그룹 공중분해 

박삼구 회장 취임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변화. 그래픽= 김경진기자
박삼구 회장 취임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변화. 그래픽= 김경진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품었던 그룹 재건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금호타이어 인수에 실패한 뒤 주력 계열사였던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하게 되면서 사실상 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금호고속과 건설사인 금호산업 정도만 남게 돼 기업 규모는 창업 초기 수준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박 전 회장은 2002년 취임 이후 무려 10조원을 들여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공격적으로 회사를 키웠지만 ‘승자의 저주’가 오히려 그룹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금난으로 계열사를 매각한 뒤 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에 집착하는 등 과욕을 부리다 지금의 사태를 맞았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과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15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을 직접 만나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매각 방안을 담은 그룹의 수정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오너 부자(父子)가 함께 채권단을 찾아간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며 “사실상 채권단에 백기투항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이 1946년 택시 2대로 창업한 광주택시와 1948년 설립한 광주여객자동차(금호고속) 등 운수업을 기반으로 사세를 키운 기업이다. 1980년대 말 제2 민영항공사업자로 선정되며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켰고, 건설, 레저, 정보통신(IT) 등 다양한 사업분야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금호고속은 국내 고속버스 시장 점유율 1위,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함께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FSC)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이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 무리한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그룹 전체가 어려움이 빠졌다. 재계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은 취임 이후 그룹을 재계 순위 5위 안에 올려놓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했다”며 “그룹의 장기적 비전을 살피기보다 사세를 넓히려는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2008년 대한통운을 4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덕분에 고속버스와 건설, 항공 등 3개 사업을 기반으로 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라섰다. 문제는 인수를 마무리한 다음해에 발생했다. 2009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 경기가 둔화하면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가 곤두박질쳤고, 재무적 투자자들이 대거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휘청거린 것이다.

인수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해 후유증을 겪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2009년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10년 대우건설과 금호렌터카, 2011년 대한통운, 2012년 금호고속(2015년 재인수)이 차례로 매각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빚 잔치’를 끝내고 겨우 한숨을 돌린 2013년 재계 순위는 18위까지 밀려났다.

무리한 몸집 불리기는 ‘형제의 난’으로 이어졌다. 창업주의 3남인 박삼구 전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에 4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반대하면서 갈등이 시작됐고,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형제는 갈라섰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09년 동생을 대표 자리에서 해임하고,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퇴진했다.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은 민형사상 소송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고,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별개의 기업이 됐다.

박 전 회장은 2014년 금호산업 워크아웃 종료를 계기로 그룹 재건을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지주회사였던 금호산업에 대한 채권단 지분을 모두 사들이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터미널 등의 경영권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 전 회장은 채권단과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2015년 9월 7,288억원을 지급하고 금호산업 지분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박 전 회장은 멈추지 않고 2017년 1월 금호타이어 인수까지 선언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항공, 타이어, 건설사업을 3대 축으로 삼고 있었던 만큼 금호타이어 인수는 그룹 재건의 마침표였다.

하지만 이는 박 전 회장의 조급함에서 나온 과욕이었다. 당시 금호타이어 인수에는 약 1조원의 자금이 필요했다. 당시 금호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직후여서 그 만한 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박 전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를 고집했다. 결국 박 전 회장은 그해 11월 금호타이어 인수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7월 벌어진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태’도 박 전 회장의 욕심이 부른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내식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납품하기로 한 업체인 게이트고메코리아(GGK)의 인천 영종도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게 원인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 보면 박 전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내식 납품업체를 GGK로 갑자기 바꾸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그룹 와해의 결정타는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외부감사법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받은 감사 ‘한정’ 의견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본래 재무구조가 튼실한 기업이었다. 그런데 박 전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계열사인 금호터미널을 자신의 지분이 높은 금호기업에 헐값으로 넘기면서 재무구조가 악화했다는 분석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그룹이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박 전 회장이 주요 계열사를 모두 되찾으려 했고, 경영권까지 집착하면서 기업을 막다른 길로 몰았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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