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사장 체불임금 잠적 사태 때도 도의적 책임 느껴 해결에 노력… “모두 동참하는 한인회 만들 것”
지나치려고 해도 반드시 눈에 띈다. 이어 입안에서 웅얼거리게 된다. ‘아름다운 공동체’.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공동체, 그것도 ‘아름다운’이 꾸며주는 공동체라니 절로 흐뭇하다. 50년 가까운 세월, 분란 한번 없었다면 거짓말일 게다. 그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결국 모임의 내공이다.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간판까지 새긴 인도네시아 한인회는 세계에서 가장 화목한 한인회로 꼽힌다.
지난달 말 6대 박재한(59) 회장이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직장에서 시키는 대로 적도를 오갔던 일본어 전공 회사원은 인도네시아 정착 27년 만에 3만 인도네시아 한인들을 보살피게 됐다. 그는 1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봉사단체인 한인회의 뿌리를 잊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한인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동포들도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충북 괴산 출신 자수성가 사업가는 ‘2초의 기회’ 덕분에 여기까지 왔노라고 했다. 위기든, 변화든, 업무든 언제나 2초 정도 결정할 기회를 운 좋게 누렸다는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이 옮겨가면서 그는 인도네시아와 연을 맺었다.
1997년 봉제회사 BPG(Busana Prima Global)를 세우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비좁은 3층 상가에 공장도 없이 진열실 사무실 표본실만 두고 외주를 받아 다른 봉제공장에 하청을 주는 식이었다. “바이어와의 신뢰 덕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지금은 어림없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바이어가 준 달러 대금은 그 해 동남아 외환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줬다. 98년부터 몇 년마다 봉제공장을 하나씩 지었다. 2007년엔 봉제공장 4개에 종업원 9,000명을 거느리는 규모로 커졌다.
최저임금이 3년 만에 100% 오르자 박 회장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2013년 한국인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4성급 호텔을 지었다. 2017년엔 대규모 물류창고회사를 차렸다. 그는 “사무실 임대 등이 잘 되길래 호텔을 지었고,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롯데가 창고를 찾는다고 하길래 맞춤형으로 지어줬다”고 말했다. 현재 박 회장 회사의 연 매출은 5,000만달러, 종업원은 2,000명이다. 그는 “앞으로 인도네시아에서 10년 먹거리 아이템은 물류”라며 최근 박사학위까지 땄다.
한인회 관련 일을 하게 된 것도 2초의 기회 덕이라고 박 회장은 말한다. 외치에 힘쓴 신기엽 4대 회장 밑에서 부회장을 했고, 내치에 주력한 양영연 5대 회장 체제에서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현재 한국봉제협의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래서 한인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고 잠적한 에스카베(SKB) 사태 해결에도 초기부터 관여했다. 그는 “SKB가 봉제협의회 회원은 아니지만 봉제업체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난처했다”라며 “사업을 오래하면 룰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룰을 지키지 못할 만큼 어려운 처지라면 언제든 한인회 등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자카르타=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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