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급 자동차로 분류되는 수십억 원대 스포츠카를 둘러싼 예금보험공사와 저축은행 전 회장간의 담보물 확인 소송에서 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저축은행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차량이 저축은행 담보물이 아니므로, 예보가 임의로 매각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저축은행 전 회장은 수년 전에도 자신의 또 다른 차량 20여대를 예보가 담보물로 간주해 매각했다고 주장하며 예보를 상대로 수백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져 양측의 법적 분쟁은 확대될 전망이다.
14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춘천민사1부(부장 김복형)는 최근 도민저축은행 파산관재인인 예보가 저축은행 소유주였던 채규철 전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청구 및 담보물 확인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검찰에 압류된 자동차 3대가 예보가 처분 가능한 저축은행의 담보물이 아니라, 채 전 회장 개인 및 관련회사 소유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번 소송결과가 주목 받는 이유는 소송대상이 된 자동차 한대의 가격이 수십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세계 최고급 차량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해당 차량은 프랑스의 부가티 베이런 16.4(2006년식) 모델과 스웨덴의 코닉세그 CCR(2005년식), 뉴코닉세그 CCR(2005년식) 모델이다. 국제 시세는 매년 조금씩 변하지만 한대에 30억~5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동차 마니아라면 죽기 전에 한번 타보고 싶어하는 꿈의 자동차로 불린다.
과거 도민저축은행과 경비용역업체 등을 운영했던 채 전 회장은 해외 인맥을 활용해 자동차 수입 판매상을 병행했다. 해외에서 특별 제작된 스포츠카를 국내로 들여온 뒤, 주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굴지의 대기업 오너에게 판매해왔다. 채 전 회장은 문제의 차량 3대도 판매를 앞두고 경기 하남시의 창고에 보관해뒀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42)씨가 2010년 6월 차량을 해외로 빼돌리려다가 실패하고 캐나다로 달아나버렸다.
채 전 회장은 가까스로 차량을 회수했지만 2011년 5월 검찰의 저축은행 수사로 구속되자, 예보는 해당 차량을 저축은행의 담보물로 간주해 매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채 전 회장이 담보물이 아니라며 자동차 열쇠를 내놓지 않자 예보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자동차를 처분하지 못하고 수년 동안 상당한 금액의 보관비용을 내고 있는 점도 예보에겐 부담이 됐다. 예보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선 채 전 회장이 이겼다. 재판부는 양측이 제출한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서 판단한 결과 예보가 해당 자동차의 담보권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예보는 그 동안 보관해온 자동차 3대를 소유주인 채 전 회장에게 돌려줘야 한다.
예보와 채 전 회장간 소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채 전 회장이 부실대출 혐의(배임)로 구속돼 4년간 수감돼 있는 동안, 예보가 창고에 보관돼 있던 채 전 회장의 스포츠카 23대도 앞선 3대의 차량과 마찬가지로 저축은행 담보물로 보고 순차적으로 처분했다. 10대는 경매나 공매를 통해 팔았고, 13대는 차량 소유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넘겼다. 매매된 차량은 페라리와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츠, BMW 등의 최고급 수입 자동차들로 모두 수억원에서 10억원이 넘는 고가 차량들이다. 23대의 차량가격은 모두 150억원대로 추정된다.
채 전 회장 측은 “이번에 담보물이 아니라고 판정 받았던 부가티 등 3대의 차량처럼 예보가 과거 매각했던 차량 23대도 저축은행 담보물이 아니었다. 예보가 마음대로 팔아버렸다”며 향후 예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하지만 예보는 해당 차량에 대해 저축은행의 담보물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매각했다는 입장이라 치열한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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