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 대선에 ‘북 도발’ 영향 메시지… 내부적으론 ‘연말까진 자력갱생’ 시간표 제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한을 ‘연말’로 못박았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선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약점’을 파고드는 동시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자력갱생의 시간표를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 이틀째 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갖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재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도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연말’ 시간표를 제시한 것은 내년에 있을 미국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협상 환경이 자신들에게 유리해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연말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은 ‘그때까지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회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대체로 잘 관리하고 있다는 미국 내 여론을 언제든 깨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불리한 정치적 환경을 가져다 줄 ‘카드’를 슬쩍 내비친 것이란 뜻이다.
사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이면 미국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돌입하고, ‘재선’을 꿈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제재를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가 가까워지고 있으며 북한의 대미 무력도발도 멈췄다는 점을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공산이 크다. 김 위원장의 연말 시간표 제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청사진을 겨냥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제재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내 초조함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내부에선 대북제재가 머지 않아 풀릴 것이란 기대감이 축적돼 왔을 것이라는 게 근거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제재 해제에 대한 주민들의 갈망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실현되지 못한 데 따라 지도부로선 동요하는 주민들에게 연말까지는 버텨야 한다고 독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의 기치로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된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전에 자력갱생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이 드물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당장의 협상 재개는 어렵고 그렇다고 대화 판을 깰 수도 없는 게 지금 북한의 처지”라며 “연말까지 자력갱생으로 버텨보는 것 외에 북한도 별다른 수를 못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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