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현 총리비서실장, 나가미네 일본 대사와 산행… ‘물밑 채널’ 역할 주목
여전히 냉랭한 일본은 언론서 “아베, 6월 G20때 한일정상회담 보류 검토”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정운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수 차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 측이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조현 외교부 1차관이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 “한국정부가 다양한 안을 신중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에 언급하는 등 정부의 대일 유화적 제스처가 포착된 가운데, 지일파로 불리는 이 총리 측이 움직이면서 관계개선의 계기가 생길지 주목된다.
14일 정 실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따르면 정 실장은 전날 오후 나가미네 대사 일행과 함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주차장에서 만나 안산 둘레길을 걸었다. 우리 측에선 정 실장과 추종연 총리 외교보좌관, 김성남 비서관과 통역이, 일본 측에서는 나가미네 대사와 정무관 2명, 통역 등 총 8명이 무악재 방면에서 시작해 두 시간여 산행을 함께했다. 산행에 초대해 준 답례로 나가미네 대사가 조만간 정 실장을 대사관저로 초대했다고 정 실장은 설명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고위인사가 총리를 예방할 경우 정 실장과 나가미네 대사는 각각 이 총리와 일본 측 배석자로 참석하면서 인연을 맺어왔다고 한다. 이후 나가미네 대사의 제안으로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처음으로 단독 만남을 가진 후 최근에는 인사동에서 저녁 식사도 했다. 정 실장은 “저는 한일 외교의 직접적인 당국자가 아닌 까닭에 한일 양국 현안을 다루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적 교류라는 정 실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교류는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이 총리의 심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식적인 루트는 아니지만 한일 양국 고위층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전달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양국의 접촉이 시작된 것이란 의미다. 지난해 11월 총리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정 실장이 친일파 규명과 근현대사를 연구해 30권가량의 책을 낼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역사 전문가라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산행을 소개한 글 말미에 “한일 두 나라는 미우나 고우나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이라고 한 정 실장이 양국의 가교 역할을 언급한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당장은 양국 관계가 싸늘하지만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무라야마 담화, 간 나오토 담화가 나오던 그 시절에는 선린과 교류의 꽃이 피기도 했었다. 양국 간에 그런 시절이 또다시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머지 않은 때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혹여라도 우리 두 사람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했다. 얼어 붙은 한일 관계를 녹여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물밑 채널’로 이들이 역할을 해낼지 주목하는 이유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는 6월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국 측에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다. 교도(共同)통신과 산케이(産經)신문은 이날 복수의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문 대통령이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한일 정상 간 회담을 통해서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무성 간부는 산케이신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한일 양국이 회담은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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