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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못 이룬 ‘유토피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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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못 이룬 ‘유토피아의 꿈’

입력
2019.04.1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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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귀국전… 여의도 계획ㆍ세운상가 등 건축가들의 꿈 보여줘 

김수근이 꿈꾸었던 여의도와 현재 여의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최춘웅 건축가의 ‘미래의 부검’. 아르코미술관 제공
김수근이 꿈꾸었던 여의도와 현재 여의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최춘웅 건축가의 ‘미래의 부검’. 아르코미술관 제공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설계됐던 세운상가 인근 재개발 계획을 표현한 김성우 건축가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 아르코미술관 제공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설계됐던 세운상가 인근 재개발 계획을 표현한 김성우 건축가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 아르코미술관 제공

#1. 1969년 서울시가 발표한 ‘여의도 및 한강 연안 계발계획’에는 당시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여의도에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시청, 외국 공관 등 주요 정부 시설과 초고층 상업지구와 공원을 만들기로 돼 있었다. 건물 사이로 아스팔트 도로를 만들고, 그 위로 보행자 전용 데크가 연결된다. ‘꿈의 서울’로 묘사된 이 청사진은 당시 ‘국가 건축가’로 불렸던 김수근(1931~1986)의 작품이었다.

#2. 1967년 서울 종묘에서 남산까지 1㎞를 가로지르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 세운상가 설계안이 발표됐다. 당시만해도 급증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하면서 인접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건축 프로젝트였다. 보행자 전용 데크와 아트리움(중앙홀) 등 서구 건축 양식이 도입됐다.

1960~70년대에는 경제발전과 함께 국가 건축에서도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진행됐다. 경부고속도로, 소양감댐 등 대형 국토개발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동시에 한강개발, 세운상가, 엑스포 70 한국관 등 도시 원형을 바꾸는 프로젝트들도 추진됐다. 대부분은 국가기관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에서 주도했다. 김수근을 비롯해 서구에서 건축을 공부했던 2,30대 건축가들도 기공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동원됐다. 이들이 설계한 프로젝트들은 현재 서울뿐 아니라 한국 도시 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박정현 건축비평가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은 오로지 국가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의 유토피아는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호평을 받았던 한국관의 귀국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1전시실의 ‘부재하는 아카이브’에 서현석 건축가의 ‘환상도시’가 상영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호평을 받았던 한국관의 귀국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1전시실의 ‘부재하는 아카이브’에 서현석 건축가의 ‘환상도시’가 상영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한국 현대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축가들의 유토피아를 엿볼 수 있는 전시인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에서 선보인 작품들로 꾸려진 귀국 전시다. 지난해 베니스 전시에서 15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해외 언론들로부터 ‘한국 건축과 정부의 긴장감이 돋보인 전시’ ‘흥미로운 전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다영 공동 큐레이터는 “기공은 1960년대 한국 건축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 기공의 작업을 ‘유령’으로 설정하고 전시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당시 건축가들이 꿈꾸었던 도시는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실현되지 못했다. 시민의 자유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김수근의 ‘여의도 계획’은 민간 토지매매 등 자본의 논리에 막혀 초고층 상업시설로만 남았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강남 개발과 1980년대 용산전자상가의 부상으로 슬럼화됐다. 전시는 이 같이 실현되지 못한 건축가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을 모은 ‘부재하는 아카이브’로 보여준다. 현대 건축가들이 무산된 프로젝트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도래하는 아카이브’가 전시의 다른 한 축을 맡는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귀국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2전시실에 젊은 건축가들이 1960년대 국가 건축 프로젝트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귀국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2전시실에 젊은 건축가들이 1960년대 국가 건축 프로젝트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도래하는 아카이브’에서는 김수근이 꿈꾸었던 여의도와 현재의 여의도를 동시에 모형으로 보여주는 ‘미래의 부검’(최춘웅 건축가),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 현황을 표현한 ‘급진적 변화의 도시’(김성우 건축가), 1968년 한국 최초의 국제박람회가 열렸던 구로공단의 변화와 이야기를 직물의 파빌리온으로 형상화한 ‘꿈 세포’(바래 건축듀오)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출품되지 않았던 로랑 페레이라의 만화 ‘밤섬, 변화의 씨앗’과 일본 오사카 엑스포70 한국관을 24첩의 병풍으로 재해석한 설계회사의 ‘빌딩 스테이트’ 가 새롭게 추가됐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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