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입국 후 소외계층에 헌신
한국 치즈의 개척자이자 임실 치즈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지정환(본명: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가 13일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8세.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1958년 사제가 된 지 신부는 1959년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이후 평생 동안 소외계층에 헌신했다.
전북 전주와 부안을 거쳐 1964년 임실 성당에 부임한 그는 가난하고 척박한 농민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치즈 산업에 주목했다. 그는 임실에서 산양 보급, 산양유 및 치즈 개발에 힘써왔으며 임실 성가리에 국내 첫 공장을 설립했다. 임실 치즈 농협도 그가 출범시켰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엔 외국인 사제들과 민주화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인혁당 사건 당시, 서울에서 시위 도중 추방될 위기도 겪었지만 농촌 경제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추방을 면했다. 그는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엔 우유 트럭을 몰고 광주에 가기도 했다.
그는 또 복지시설을 설립, 장애인과 소외계층도 돌봤다. 1981년 치료를 위해 벨기에로 돌아갔던 그는 3년 뒤인 1984년 다시 한국에 들어와 완주에 중증장애인 재활공동체 무지개가족을 설립하고 장애인 재활과 자립에 힘썼다. 지금까지 무지개가족을 통해 자립한 중증장애인은 100명을 넘는다.
2004년 사제직에서 은퇴한 지 신부는 2016년 법무부가 한국에 특별 공로를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적 증서를 받아 한국인이 됐다. 지 신부는 임실 지씨의 시조다. 고인의 빈소는 전주 중앙성당 소강당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16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지 신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전주=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