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민회의 2일차 시정연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입장 전환을 강력 촉구했다. ‘미국식 계산법’에 흥미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면서다. 대화 문은 연말까지 열어두겠다고 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3일 김 위원장이 전날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회차 2일차 회의에 참석해 시정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을 향한 작심 발언을 쏟아 냈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관련 입장 을 밝힌 건 처음이다. 시정연설은 약 47분간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당시 미국 태도에 상당한 불쾌함을 표했다. 그는 “(미국이) 우리를 마주하고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며 똑똑한 방향과 방법론도 없었다”며 “전혀 실현 불가능한 방법”만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장에서 제안했다는 이른바 ‘빅 딜(Big deal)’ 해법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털어놨다.
대화 문은 열어놨다. 그는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 수뇌회담(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다. 미국이 합의 기준을 낮추는 것을 전제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며 ‘일괄타결’ 제안에 다시 한번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김 위원장이 대화 시한을 못 박으며 미국 입장 전환을 촉구한 것은 북미 협상을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한 배수진일 수 있다. 내부적으로 ‘자력갱생’을 거듭 당부하며 대북제재 국면을 견디라고 주문해놓았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제재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미 협상 중단을 선언해도 뾰족한 수가 없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만한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라, 대화 재개 의사를 밝히되 최대한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회담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동시에) 외교적 다변화, 확장도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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