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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 체포 후폭풍 몰아치나… 러시아 스캔들 재점화? 미국 송환도 ‘뜨거운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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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 체포 후폭풍 몰아치나… 러시아 스캔들 재점화? 미국 송환도 ‘뜨거운 감자’

입력
2019.04.12 18:06
수정
2019.04.12 18:2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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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호주 시드니에서 시민들이 폭로 전문 사이트를 설립한 호주 국적 줄리언 어산지가 전날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된 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12일 호주 시드니에서 시민들이 폭로 전문 사이트를 설립한 호주 국적 줄리언 어산지가 전날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된 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47)가 7년간의 망명 생활 끝에 11일(현지시간) 영국 경찰에 전격 체포되면서 그 후폭풍이 전 세계 곳곳에 몰아칠 전망이다. 당장 미국에선 위키리크스가 연루돼 있는 ‘러시아 스캔들’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어산지를 미국 정부의 주요 타깃으로 만든 ‘기밀문서 70만건 공개’에다 이 사안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신병 인도 문제는 지구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위키리크스 사랑한다”던 트럼프, 이번엔 “난 모른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어산지 체포에 대해 “나는 정말로 위키리크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위키리크스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킹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진영의 내부문서와 이메일을 폭로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트럼프 후보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참모’였던 로저 스톤이 러시아, 위키리크스 측과 접촉한 사실도 특검 수사에서 드러났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어산지와의 ‘선 긋기’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는 “나는 위키리크스를 사랑한다” “위키리크스는 보물창고 같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입장을 바꿨다고 꼬집었다.

특검 수사에서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공모 의혹이 무혐의로 끝나 허탈해했던 민주당도 반전의 계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어산지를 소환하면 그의 정보 유통 방식을 비롯, (러시아와) 그의 관계 등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스캔들’의 새로운 단서들이 확보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위키리크스 폭로에 치명타를 입었던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이날 “어산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서 대답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미국 송환 가능할까… 수년 소요될 듯 

문제는 미국 송환의 실현 여부다. 영국은 미국 요청에 따라 어산지를 체포했다고 밝히긴 했지만, 2012년 영국 법원의 구인명령 불응도 체포 사유로 제시했다. 이날 사우스워크 형사법원은 곧바로 유죄를 선고했는데 최대 12개월 징역형이 예상된다. 어산지가 영국에서 죗값을 받아야 하는 만큼 단기간 내 미국에 인도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어산지 측의 소송 제기로 치열한 법정 공방이 빚어지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11일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영국 경찰에 체포된 이후 호송 차량을 타고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에 도착한 줄리언 어산지가 취재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7년간의 망명 생활에 지친 듯 백발에 흰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11일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영국 경찰에 체포된 이후 호송 차량을 타고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에 도착한 줄리언 어산지가 취재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7년간의 망명 생활에 지친 듯 백발에 흰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송환을 둘러싼 영국 내부의 논란은 이미 시작됐다. 영국 정부는 “누구도 법률보다 위에 있지 않다”고 어산지 체포를 옹호한 반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어산지는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벌어진 (미군의) 잔혹한 행위를 폭로한 인물로, 정부가 그를 미국에 넘겨선 안 된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호주 국적인 어산지에 대한 타국의 신병 확보와 관련,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12일 “영사 원조를 받겠지만, 특별 대우는 없을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도 촉발될 전망이다. 어산지의 변호인인 제니퍼 로빈슨 변호사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언론인이든 미국과 관련한 진실된 정보를 공개하면 기소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 전ㆍ현직 대통령도 ‘설전’ 

에콰도르에선 전ㆍ현 대통령들 간 말싸움이 빚어지기도 했다. 자국 대사관에 피신해 있던 그를 영국 경찰이 체포하도록 허용한 게 온당한지가 문제가 된 것이다. 2017년 취임한 레닌 모레노 현 대통령은 어산지를 향해 “비참한 해커” “버릇없는 망나니” 라고 비판했다. 에콰도르 관리들에게 무례를 범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에콰도르 정부가 ‘어산지 보호’를 포기하게 된 근본적 이유로 ‘거만함과 배은망덕, 내정간섭’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러나 2012년 집권 시절 어산지의 망명을 허용한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은 모레노 현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현 정부는) 어산지가 망명 조건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나, 그를 사자 앞에 던진 건 변명의 없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키리크스가 모레노 대통령 및 가족의 해외은행 계좌 정보를 공개하자 모레노는 중남미의 망명 전통을 훼손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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