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땀 흘려 일한 백인 남성 5명의 속옷이 진공포장돼 한 도시의 자판기에서 판매된다. 이 속옷을 구입한 젊은 아시아계 여성은 땀 냄새를 맡으며 황홀해하고, 영상에는 “이게 봄 내음이지”라는 자막이 뜬다.
최근 인종 비하 논란을 일으킨 독일 기업 ‘호른바흐’(HORNBACH)의 광고다. 한국 교민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주독 한국문화원까지 공식 항의하는 등 반발이 컸지만, 광고는 여전히 방영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의 인종차별 논란은 한두해 된 문제가 아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중의 이목을 모으려고 몇몇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논란을 부추길 장치를 활용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고의이든, 실수이든 이런 논란은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에 타격을 입힌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왔던 기업 광고 사례들을 모아봤다.
① 버거킹의 ‘젓가락으로 먹는 햄버거’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의 뉴질랜드 지사는 최근 젓가락으로 햄버거를 집어 먹는 장면을 담은 광고를 내보냈다. 남녀가 길고 굵은 젓가락을 사용해 햄버거를 집어먹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연출됐다. 광고는 신제품 ‘베트남 스위트칠리 텐더크리스프’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한국계 뉴질랜드 여성이 트위터에 광고 영상을 올린 후 200만명이 영상을 클릭하면서 논란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아시아인의 상징을 젓가락으로 표현하고, 힘겹게 젓가락질 하는 모습으로 아시아인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버거킹 본사는 9일(현지시간) 해당 광고를 삭제하고 공식 사과했다. 버거킹은 “해당 광고는 무분별했고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한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② 구찌·프라다·돌체앤가바나… 명품브랜드도 인종차별
최근 세계적인 명품 패션업체들도 줄줄이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구찌는 지난 2월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를 출시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검은 스웨터에 입 주변을 붉게 연출한 디자인이 ‘블랙페이스’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블랙페이스는 19세기 백인 연극에서 흑인 노예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한 흑인 이미지다. 구찌는 공식 사과 후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프라다는 지난해 12월 까만 얼굴에 커다랗고 빨간 입술 모양의 캐릭터 열쇠고리를 공개했다. 하지만 열쇠고리는 흑인을 희화화해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일었다. 프라다는 매장에서 해장 제품을 모두 수거했다. 여론을 의식해 여러 인종의 의견을 듣기 위한 다양성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했다.
돌체앤가바나는 지난해 광고에 중국인을 비하하는 듯한 이미지를 심어 곤욕을 치렀다. 광고는 돌체앤가바나 드레스를 입은 중국 여성이 젓가락을 이용해 기이한 방법으로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내용이다. 논란 후 영화배우 장쯔이, 모델 천쿤 등 중국 유명 연예인은 상하이 패션쇼 보이콧을 선언했고, 중국 국가문화여유부의 요구로 패션쇼는 취소됐다.
③ 도브, 흑인에서 백인으로 변신
미용용품업체 도브는 지난해 10월 흑인 여성이 티셔츠를 벗자 백인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광고로 내보냈다. 백인의 우월 의식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도브는 광고를 삭제하고 “여성들의 피부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핵심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광고에 출연한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 모델 로라 오구니에미는 해외 언론매체를 통해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광고 원본에는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인물 7명이 옷을 벗으면 다른 인물로 변하는 과정이 담겼는데, 편집 과정에서 오해를 샀다는 것. 의도적인 인종차별이라는 오해는 덜었지만, 제작에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④ 흑인 아동에게 ‘원숭이’ 후드티 입힌 H&M
패스트패션 업체 H&M은 1월 ‘정글에서 가장 멋진 원숭이’라는 글귀가 적힌 후드 티셔츠를 판매하면서 모델로 흑인 아동을 내세웠다. 같은 디자인에 ‘맹그로브 정글’ ‘공식 생존 전문가’라고 쓴 다른 의상은 백인 아동이 입었다.
‘원숭이’는 오랫동안 인종 비하의 뜻으로 사용돼 즉각 비판이 일었다. H&M과 협업한 경험이 있는 가수 위켄드는 트위터를 통해 “아침에 일어나 사진을 보고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더는 H&M과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H&M은 문제의 광고 사진을 모든 채널에서 삭제하고 “우리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믿고 있고, 향후 불거질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내부 정책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사과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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