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많이 힘들 거다” 안아주며 위로
“그 일이 생기고 한달 뒤쯤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만난 분들이 꼭 안아주더라고요. ‘너무 잘 알고 많이 힘들 거다, 그래도 밥 잘 챙겨먹어야 한다’면서요.”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2017년 4월 세월호 유가족들과 처음 만난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 해 3월 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 타고 있던 허씨의 동생은 실종 상태. 생전 처음 직면한 충격과 슬픔에 홀로 서기조차 힘겨웠다. 그 때 세월호 유가족들이 먼저 다가왔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에도 우리 사회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을 비롯해 숱한 참사와 마주했다. 참사는 새로운 유가족을 남겼지만 세월호 이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어느 순간 그들 곁을 세월호 유가족이 함께 지키게 됐다는 점. 허경주 대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을 때 그분들이 가장 먼저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기억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참사 유가족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숱한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보다 안전한 사회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동력’은 세월호 유가족이지만 ‘시동’은 앞선 참사의 유가족들이 걸었다. 대구지하철참사, 춘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씨랜드 화재,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먼저 전남 진도군 팽목항과 경기 안산시의 분향소, 국회 농성장의 세월호 유가족들 옆으로 다가갔다.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던 유가족에게 “미안하다”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건넸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앞선 참사의 생생한 증언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김시연양의 엄마 윤경희씨는 “국회 농성 때 대구지하철참사 생존자란 분이 찾아와 ‘기록이란 게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사진을 찍는다’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줬다”고 말했다. 윤씨는 “돌이켜보면 그 분과 이야기하며 처음 마음이 열렸다”고 했다.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을 매일 만나며 3년 전 자신이 어떻게 싸워 왔는지를 설명한 춘천 산사태 희생자 어머니도 윤씨에게 감사한 존재였다.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4ㆍ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참사 피해 유가족들 사이에 연대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했다. “국회 단식 둘째 날 두 분이 제 앞에 무릎을 꿇더니 ‘태안 해병대 캠프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다, 저희가 포기 안 하고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며 울었다. 그 때는 솔직히 태안 캠프 참사 땐 혀를 찼던 기억이 떠올라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그리고 비로소 희생자 가족들이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게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지 알게 됐다.”
그러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다른 참사 희생자들을 향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구의역에서 청년 노동자가 숨진 뒤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2인 1조 근무와 비정규직 문제를 꼬집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숨진 노동자의 엄마 아빠를 먼저 떠올리고 만나러 달려갔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세상을 떠났을 때는 서울대병원에서 고인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웠다. 스텔라데이지호 유가족들이 늦은 밤 외교부 앞에 텐트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잠을 잘 수 없어 안산에서 서울로 향했다. 지난 몇 달 간 이어진 고 김용균씨의 추모집회 참석명단 한 켠에도 언제나 4ㆍ16 세월호 가족협의회가 있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유가족 네트워크
이렇게 세월호를 중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안전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대구지하철 유가족이 앞장서 참사 원인을 밝히며 전국 지하철 내장재가 불연재로 교체됐고, 춘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유가족은 강원도 재난 조례를 이끌어냈다. 유경근 위원장은 “피해자들이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다면 잘못된 게 바뀌지 않아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인 전재영 2ㆍ18 안전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유가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외롭게 싸웠다면 지금은 세월호 유가족을 중심으로 안전 사회 개혁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참사 유가족의 연대는 걸음마 단계.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모인 ‘생명안전시민넷’이 지난해부터 참사 피해자ㆍ유가족 연대를 원하는 이들을 연결해주고 있긴 하지만 네트워크 조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프랑스의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 ‘펜박(FENVAC)’을 사회적 참사 유가족 연대의 모델로 설명한다. 펜박은 열차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전국 유가족들을 모아 결성한 민간단체인데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피해자가 직접 수사와 재판 과정에 참가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펜박은 최근 활동 범위를 전세계로 넓혀 지구촌 어디서도 참사가 발생하면 즉각 현장을 찾아가 피해자 단체를 결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경근 위원장은 “’하늘에 있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펜박 사무총장의 위로를 듣고 버티고 싸운 게 잘 한 일이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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