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공들인 임시정부 100년 행사도 포기하고 방미
북한, 제재 해제 급해도 “자력갱생”, 미국은 상황 관망 배짱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40여일이 지난 가운데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포스트 하노이’ 전략을 세우고 새판짜기에 들어간 국면이다. 북측은 ‘단계적 비핵화’를, 미측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면서 접점을 찾는 데 실패한 후 한반도 정세가 중대국면을 맞고 있다. 냉각기가 더 길어지면 북미 간 간극이 벌어져 결국 북핵 문제가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는 쪽으로 작용할 경우 남북미 3자 모두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북미의 움직임을 놓고 본보 외교안보팀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한미 정상회담 날짜(11일)가 공교롭게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개최 날짜와 같았죠. 이날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했어요. 우연인가요. 포개진 한반도 빅 이벤트들의 파장은 뭔가요.
판문점 메아리(메아리)=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합의문도 못 만들고 헤어진 뒤 문재인 대통령은 속이 탔을 듯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둘을 만나고 싶었을 거예요. 지난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한반도 해빙 분위기는 사실 남북미 정상의 ‘케미스트리’(궁합)에 의존한 측면이 큽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나서지 않았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만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은 문 대통령이 공을 들인 행사입니다. 그런데도 포기할 만큼 지금 북미 간에는 뭔가 다시 만날 명분이 절실했고 그걸 만들어줘야 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게 문 대통령 판단이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뚜벅이=정부가 조속히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트럼프가 빨리 김 위원장 입장을 전달해달라고 화답한 걸 보면 판문점 회담 1주년인 4·27 등 상징적인 날짜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일시를 맞추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도렴동 흰둥이(흰둥이)=한미 정상회담은 하루빨리 북미 대화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절박함으로 성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만 보면 꽤 급박합니다. 지난달 20일 전후 외교부 실무진 방미, 29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4월 첫째 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미국 방문까지 약 일주일 간격으로 회담 급을 높이면서 3주 만에 4ㆍ11 정상회담에 ‘골인’한 것이죠. 게다가 문 대통령의 미국 일정도 24시간 내로 간소화해 한미 정상 간 만남에 의미를 둔 ‘실속형’으로 꾸려졌습니다. 초반 실무진 방문 때만 해도 대북 제재 완화 관련 양국 입장 차가 심하다는 우려가 대세였던 반면 정상회담 후 남북대화 등 북미 협상 재개 방안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의도했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불나방=이번 주 잇따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중 주목할 부분은 뭘까요.
마음은 콩밭에=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재개에 쉽게 응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밝혔다는 점입니다. “제재로 우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한 적대 세력”이라고 미국을 부르면서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밝힌 건데요.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으라는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큰소리 쳐놓은 만큼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협상을 중단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일단 ‘현상유지’를 하려는 듯합니다.
불나방=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죠. 재개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요. 문 대통령의 역할은 있을까요.
밥먹었더니 배불러(배불러)=빅딜과 스몰딜의 절충인 조기수확론을 내세운 문 대통령은 북미 양측 모두로부터 조금씩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 같은데,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으니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지고 난 후에야 문 대통령의 역할이 가시화할 것 같습니다.
메아리=북미 양쪽 다 파국을 바라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로 먼저 양보하지 않으려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나 최고 지도자로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자기 입장이 있는 거고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줄곧 해온 것처럼 3차 회담이 가능하다고,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트럼프는 말했어요. 김 위원장에게도 이제 도발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너무 멀리 왔습니다. 핵ㆍ미사일 시험을 재개하거나 하면 중국과 러시아마저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제재는 더 강화할 테고요. 경제가 곤두박질치겠죠. 정권도 흔들릴 겁니다. 다시 대화에 나설 명분만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설득이 문 대통령의 몫일 수 있죠. 교착이 장기화하면 경제 건설로 노선을 틀었던 김 위원장도 어쩔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강경파 입지가 강해질 테니까요. 북미 협상은 거래입니다. 이익이 중요한 겁니다. 진정성은 없다가도 생길 수 있고,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동기를 확인하는 것보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협상이란 말을 외교관들은 합니다.
불나방=북한이 바라는 게 대북 제재 해제라는 사실이 하노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제재를 유지하며 기다리면 북한이 결국 굴복하고 나올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는 듯해요.
배불러=당장은 북한이 자력갱생하겠다고 나오고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어느 정도 북한을 도와주느냐에 북한의 굴복 시기가 정해질 거 같습니다. 경제 제재는 천천히 숨통을 조이는 거라 원론적으로 미국은 급할 게 없고, 북한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보입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관계 개선을 재선에 이용하려 한다면 미측도 시간이 많은 건 아닌 셈이긴 합니다.
메아리=문제는 권력층입니다. 북한이 수탈 경제다 보니 돈줄이 끊기면 권력층에서 불만이 생기고 권력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루마니아처럼 무너진 동구권 독재자들을 보면 통제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았죠. 제재 국면이 장기화하면 김 위원장이 망명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겁니다.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이기는 합니다. 지금 상태만 유지되면 야당으로부터 공격 당할 일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위협이 제거되지 않은 현 상태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큰 업적을 위해 제재 해제를 레버리지로 사용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합니다.
불나방=우리 정부가 제안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합의)의 요체는 무엇인가요.
흰둥이=청와대가 제시한 ‘굿 이너프 딜’은 포괄적 비핵화 합의 및 단계적 이행 기조를 새로운 말로 포장한 개념입니다. 미국에 단계적 비핵화 이행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되 ‘빅딜’과 ‘스몰딜’의 대립 구도를 흐리게 해 양측에 합의 부담을 덜게 하려는 의도 하에 나온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아직까지 외교가에선 지지보다 의문이 많은 듯 합니다. ‘굿 이너프’라는 것이 사실상 합의의 알맹이라기보다는 프레임 차원이자 ‘좋은 합의’라는 평가를 뜻할 뿐이어서죠. 또 일각에선 북미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태에서 “대체 누구에게 좋은 합의냐”는 의구심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구체적인 비핵화 중재안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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