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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못 듣는 음악가 최소리의 도전 “소리를 본다”

입력
2019.04.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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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국내에서 록 밴드가 인기를 끌 때 시나위와 더불어 록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밴드가 백두산이다.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기타리스트 김도균을 비롯해 가수 유현상 등이 참여한 이 밴드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다.

최소리(53)씨는 백두산에서 드럼을 쳤던 록 음악가였다. 그는 어떤 물체를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에 반해서 12세때부터 북채를 잡아 40년간 연주를 했다. 백두산 해체 후에도 그는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솔로 공연을 하며 타악기 주자로는 드물게 10장의 음반을 냈고, 두드려서 멜로디를 낼 수 있는 가야금을 닮은 ‘소리금’이라는 악기까지 만들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록 밴드 백두산에서 드럼을 쳤던 최소리씨. 역경을 딛고 화가로 변신회 전시회를 갖는다. 홍윤기 인턴기자 /2019-04-1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록 밴드 백두산에서 드럼을 쳤던 최소리씨. 역경을 딛고 화가로 변신회 전시회를 갖는다. 홍윤기 인턴기자 /2019-04-12(한국일보)

그의 연주 모습은 참으로 독특하다. 두 개의 스틱으로만 연주하는 일반 드럼 연주와 달리 그는 한꺼번에 7,8개 드럼 스틱을 양 손에 끼우고 번개 치듯 북을 울려댄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신들린 듯 연주하는 모습이 널리 알려지면서 G20 정상회담,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공연을 했다.

그런 그가 화가로 변신해 17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때 인기 절정의 록밴드 드러머였던 그가 타악기 연주자를 거쳐 화가가 된 이면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인 양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오랜 세월 북을 두드리면서 소음성 난청이 생겼고 여기에 신경성 난청까지 겹쳤다. 사람의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 띄엄띄엄 들리는 단어와 입 모양을 보고 대화를 이어 간다. 전화는 거의 하기 힘든 상황.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든 소리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림을 택했다. 즉 악상의 시각화다. 전시회 주제를 ‘소리로 본다’로 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림 역시 그가 연주하는 방법 만큼이나 기발하다. 그의 캔버스는 천이 아니라 금속판이다. 그 위에 악상이 떠오르면 여러 개의 북채를 들고 드럼 연주하듯 힘차게 두드린다. 스틱이 날아다닐 때마다 철판 위에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다.

스틱 뿐만이 아니다. 스틱 대신 망치를 들기도 하고 도끼로 철판을 찢기도 한다. 소재도 달라진다. 철, 알루미늄, 황동, 금속 망사 등 소재가 바뀔 때마다 문양과 질감 또한 변한다. 그 위에 물감을 뿌려서 두드리며 연주할 때도 있고 불을 붙여 금속 위에서 타오르는 물감의 변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남다른 독창성과 작품성으로 널리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앞두고 11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최소리씨가 북채로 철판을 두드려 작품을 만들고 있다. 최소리씨 제공
최소리씨가 북채로 철판을 두드려 작품을 만들고 있다. 최소리씨 제공

-언제부터 독특한 미술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나.

최소리: 음악 작업을 하다가 볼펜을 던졌는데 책상에 부딪치며 찍힌 자국을 보고 불현듯 영감을 얻었다. 내가 북을 두드리듯 스틱과 붓에 물감을 묻혀 두드리면 독특한 그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여러 작품을 만들어봤고 2007년에 처음 개인전을 했다. 그동안 만든 작품은 200여점 된다. 이번이 2017년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과거 전시회와 어떤 점이 다른가.

최: 재료가 과거와 많이 다르다. 과거에는 일반 철판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망사처럼 만든 다양한 금속 소재를 캔버스로 사용했다. 금속 망사 위에 여러 가지 물감을 발라 두드려서 사계절을 각각 표현했다. 금속 망사 위에 바른 물감들이 망사를 통과해 흘러 내리는 과정을 통해 좋지 않은 찌꺼기들이 빠져나간 순수의 결정들을 담아 보자는 의도였다.

-전시회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최: ‘천 개의 눈’이라는 작품이다. 금속 판을 스틱으로 강하게 때려서 한 가운데가 움푹 파인 작품인데, 그 앞에 서면 보는 사람의 형성이 다양하게 변한다. 이를 통해 평소 봤던 모습과 또 다른 자아를 맞닥뜨리게 했다. 그동안 봤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다.

-독특한 소재와 방법 때문에 작품 활동에 어려움이 많을텐데.

최: 집 근처에 커다란 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업실을 마련해서 작품 활동을 한다. 금속을 두드리다보니 소리가 커서 실내에서 하기 힘들다.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 무아지경에 빠져서 2,3일씩 아무것도 먹지 않고 더위와 추위도 잊은 채 일을 한다. 그 바람에 지난 겨울 양쪽 귀에 지독한 동상이 걸렸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히말라야 다녀왔냐”고 물었다. 조만간 귀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럼 이제 음악 공연은 하지 않나.

최: 특별한 외부 행사가 아닌 이상 개인적인 콘서트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동안 연주가로 굳어진 이미지를 이번에 바꾸고 싶다. 그래서 전시회 개막일에도 과거와 달리 연주를 하지 않는다. 미술 활동도 음악의 연속이다. 악상을 악기 연주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러니 미술 작품 하나하나가 곧 곡이다. 음악 활동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작품 계획은.

최: 내년에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공연 미술을 하고 싶다. 음악을 틀어놓고 연주를 하며 주변에서 무용도 하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어 재생하는 종합 예술이 될 것이다. 이런 방법은 음악을 연주했던 나의 개성과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다.

최소리씨가 금속 철망 위에 물감을 바르고 두드려 만든 ‘봄’. 최소리씨 제공
최소리씨가 금속 철망 위에 물감을 바르고 두드려 만든 ‘봄’. 최소리씨 제공

-최소리의 꿈은 무엇인가.

최: 적극적으로 해외에 미술 작품을 알리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미 외국 큐레이터들이 작품 자료를 계속 요청하고 있다. 작품의 독창성 만큼은 자신 있다. 해외에서도 이를 주목하고 있다. 욕심이 있다면 모든 가정에 내 작품이 하나씩 걸렸으면 좋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작품 수익의 70%는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다. 작품이 있는 한 예술가는 육체적 수명이 다할지라도 죽지 않기 때문이다. 잊혀지지 않는 예술가로 남고 싶다.

최연진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주소현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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