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의 후쿠시마(福島)현 등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분쟁에서 승소하자 일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과의 분쟁에서 승소를 통해 다른 나라ㆍ지역에 대한 수입규제 철폐ㆍ완화를 요구하려고 했던 일본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 외무성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 수산물 수입금지 철폐ㆍ완화를 계속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무역분쟁의 최종심에 해당하는 WTO 상소기구는 11일(현지시간) 일본이 제기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사건에서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의 판정을 뒤집고, 한국의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고 무역제한도 아니라고 판정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일본에 손을 들어둔 가장 중요한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과 12일 “WTO 상소기구가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의 시정을 요구한 WTO 분쟁해결기구의 결정을 파기한다고 발표했다”며 “최종심인 상소기구가 1심에 해당하는 패널의 결정을 뒤집은 형태로 일본이 역전 패소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도 “WTO 상소기구가 한국이 취한 조치와 관련해 ‘필요 이상의 무역을 제한하는 부당한 차별’이라고 한 1심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견해를 나타냈다”며 “이번 판단이 최종심이 돼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는 계속된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전했고, 다른 언론들도 “상소기구가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도했다. 교도(共同)통신은 “WTO 분쟁에서 일본이 역전 패소를 했다”며 “후쿠시마현 주변지역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주장해 온 일본 정부가 타격을 입게 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의 분쟁에서 승소한 다음 다른 국가ㆍ지역의 수입금지 철폐ㆍ완화를 요구하려고 했던 일본 정부의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아사히(朝日)신문은 전망했다.
일본에선 WTO 상소기구의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승소를 기대하고 있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11일 오후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WTO의 상소기구가 수입재개 판단을 표시해 일본의 승소가 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WTO 상소기구는 세슘 검사만으로 적정 보호수준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수입금지나 기타 핵종 추가검사를 요구한 한국의 조치를 무역제한이라고 판단한 1심 패널 판정을 파기하면서 과도한 조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해 일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절차적인 부분에서만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2013년 9월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히는 28개 어종의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될 전망이다.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 이후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위한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을 상대로 2015년 5월 WTO에 제소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전사고 이후 일시적으로 54개 국가ㆍ지역에서 일본산 농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ㆍ규제가 내려졌으나 일부 완화돼 현재 23개 국가ㆍ지역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편,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장관은 이날 새벽 WTO 상소기구에서의 패소가 확정된 직후 담화를 통해 “진정으로 유감”이라며 “상소기구 보고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규제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일본산 농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를 계속하고 있는 국가ㆍ지역에 대해서도 철폐와 완화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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