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후 해시태그 운동 등 페미니즘 확산이 중요한 역할
7(위헌ㆍ헌법불합치) 대 2(합헌).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 처벌 규정에 대한 판단은 위헌으로 무게추가 크게 기울었다. 7년 전 위헌과 합헌이 4대4로 팽팽했던 시각의 균형이 깨진 것은 평범한 여성들이 중심이 된 일련의 페미니즘 운동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헌재 결정 직후 제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지금까지 여성들은 불법 낙태 수술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는 2등 시민이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라며 “거리와 광장에서 차별과 낙인을 뚫고 경험을 말하며 싸워온 모두가 승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뜨거워진 여성주의 물결 속에서 낙태죄는 여성의 신체를 국가가 통제하는 상징적인 법조항으로 떠올랐고, 여성들의 꾸준한 연대 운동이 성과를 이뤄냈다는 자평이다.
실제 낙태죄 폐지 운동은 10~30대의 평범한 여성들이 이끌었다. 2015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주제어) 달기 운동이 확산된 이후 성차별과 부조리에 대한 여성들의 고발이 잇따랐다. 이때 정부의 불법 낙태수술 처벌 강화 움직임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올리면서, 국내에서도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시위’에 불이 붙었다. 이후 한국여성단체연합, 장애여성공감, 성과재생산포럼, 페미당당 등 23개 단체가 연대한 모낙폐가 결성돼 온ㆍ온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의 운동을 해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형태의 운동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결 구도에 갇혀 있던 낙태죄 폐지 목소리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여성계의 문제제기는 꾸준했지만 당사자인 2030 여성들이 나서자여론이 ‘사회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며 “전세계적인 페미니즘 부흥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형성된 폐지 여론을 헌재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젊은 여성들의 낙태죄 폐지 운동은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한 반발에 기인한 면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위에 함께한 여성들은 정부가 산아제한을 할 때는 낙태죄 처벌을 눈 감고, 출산율을 끌어 올려야 할 때는 처벌 강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출산 정책에 따라 규정이 달리 적용되는 데 문제를 제기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낙태죄 폐지를 주도해온 여성들의 대표 구호는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었다. 이 교수는 “앞으로는 낙태 문제를 단순히 아기를 낳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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