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6만7000년 전 살았던 ‘호모 루소넨시스’… 원시ㆍ현생 인류 특성 공존
필리핀 북부에서 5만~6만7,000년 전쯤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신종 고대 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원시 인류와 현생 인류의 특징이 동시에 엿보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 조상의 계보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종(種)이라는 게 이 화석을 발굴한 연구팀의 결론이다. 일각에서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국립 자연사박물관과 필리핀대학교 연구팀은 이날 영국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필리핀 북부 루손섬의 칼라오 동굴 내부에서 찾아낸 치아(7개)와 손뼈(두 개), 발가락뼈(세 개), 허벅지뼈를 분석한 결과, 인류의 최초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가까운 생물학적 특성을 함께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논문의 주된 내용이다. 연구팀은 성인 두 명, 어린이 한 명으로부터 나온 듯한 이 화석의 주인공들을 발견지인 루손섬 이름을 넣어 ‘호모 루소넨시스’라고 명명했다.
물론 아직까진 신체 일부의 화석만 발견된 상태여서 ‘신종 인류’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그럼에도 과학계는 최소 5만년 전, 최대 6만 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호모 루소넨시스의 존재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작은 치아 크기에 비춰 키는 1.2m 정도로 추측되는데, 그 당시 살았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유사한 특징이다. 비슷한 시기,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지냈던 ‘호모 플로렌시엔시스’(호빗)와도 흡사하다. 반면, 휘어진 발가락뼈는 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생활했다는 걸 가리키는데, 이는 200만~3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해부학적 특성과 같다. ‘비(非)동시성의 동시성’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모자이크 특성이다.
이번 발견이 획기적인 까닭은 인류 진화의 기존 정설을 뒤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배적 학설은 “아프리카에서만 지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150만년 전쯤부터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이후 호모 에렉투스ㆍ호모 사피엔스 등으로 진화하는 ‘단선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었으나,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전혀 다른 유형의 고대 인류도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논문의 제1저자인 플로랑 데르투아 박사는 “이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와 몇몇 다른 종들 간 이종교배, 멸종 등을 통해 인류가 훨씬 더 복잡한 진화의 역사를 밟았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홀로 있었던 게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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