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을 만나면 할 말이 없고 자꾸 바보가 됩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4월 국민경선 승리로 대선후보가 된 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에게 한 말이다. ‘바보’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별명이었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승산 없는 지역에 출마해 낙선을 거듭한 ‘바보 같은 정치인’ 노무현과 그런 노무현의 뚝심과 철학에 반해 생업도, 가정도 내팽개치고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앞장선 바보 같은 ‘노사모’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풀어낸 책이다. 노사모 회원을 비롯한 82명의 인터뷰가 담겼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18일 개봉하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용 인터뷰 녹취 원고 2만 5,000장을 꾹꾹 눌러 정리했다.
책은 평범한 시민들이 왜 ‘자발적 바보’가 돼 노 전 대통령을 따랐는지,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좇는다.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질문은 ‘노무현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이다.
책에 나타난 ‘노사모’의 면면은 ‘보통 사람들’이다. 직장인, 대학생, 아이 엄마 등 먹고 사느라 바쁜 소시민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노무현의 말처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으면 해서”, “젊은 세대는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지 않기를 바라서” 같은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들은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을 다니고, 출퇴근길에 짬을 내 지하철역 선거 유세를 도왔다. ‘정치적 계산’ 같은 건 없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이 전부였다. 노사모는 참여정부 시작과 함께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맹목적 지지자가 아닌 권력 감시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노사모의 상징인 노란 손수건 탄생 비화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담겼다. 노사모 핵심 회원이었던 ‘미키루크’ 이상호씨의 말. “20만원으로 200명의 답례품을 만들려다 보니 손수건밖에 없었어요. 부산 원단시장 가서 제일 싼 원단을 달라고 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황색 물결을 일으켰던 터라 부산에선 노란색이 제일 안 팔렸고 재고가 넘쳤어요.” 노란색은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노무현과 바보들(전 2권)
기획 손현욱 엮은이 ㈜바보들
싱긋 발행•792쪽•3만8,000원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인을 선택하는 시민이라는 것.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낡은 정치를 바꾸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모두의 이름이다. 책에서 참여정부 공과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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