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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 17세 고등학생 테러 용의자, 삶이 까발려지다

입력
2019.04.11 16:03
수정
2019.04.11 20:3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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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5>코리 닥터로우 ‘리틀 브라더’

소설 리틀 브라더의 한 장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다리와 지하철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작 제공 출처 Richard Wilkinson original illustration for limited edition Little Brother (novel by w:Cory Doctorow) CC BY-SA 2.0
소설 리틀 브라더의 한 장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다리와 지하철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작 제공 출처 Richard Wilkinson original illustration for limited edition Little Brother (novel by w:Cory Doctorow) CC BY-SA 2.0

만약에 서울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 4월의 어느 날이다. 퇴근 시간에 한강을 건너려던 차들로 가득한 한남대교가 폭발한다. 다리를 건너던 자동차와 그 안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끔찍한 테러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보기관이 곧바로 범인 색출에 나선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한남대교 근처의 한강공원에서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 몇몇이 학교를 빼먹고 증강 현실 게임을 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를 잡는 데에 혈안이 된 정보기관은 바로 이 고등학생도 용의자로 지목한다. 현장에서 잡힌 이들은 부모와의 연락도 차단당한 채 며칠간 자백을 강요당하다 풀려난다. 그 가운데 한 친구는 생사도 모른 채 행방불명 되고.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며칠간 고초를 겪은 고등학생들은 풀려나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감시의 눈길이 번뜩이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연락이 두절된 행방불명 된 친구의 사정도 궁금하다. 혹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을까. 이제 그들은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다.

코니 닥터로우의 ‘리틀 브라더’는 바로 이런 일을 겪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 ‘마커스’의 이야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다리와 지하철에서 연쇄 테러가 일어난다. 마침 테러 현장 근처에서는 학교를 빠지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아마추어 해커 마커스가 있었다. 그는 테러 현장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와 함께 정보기관에 붙잡힌다. 다음 사정은 앞에서 말한 대로다.

소설 리틀 브라더의 한 장면.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디지털 기술로 감시할 수 있는 시대.대. 2001년 9•11 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감시가 강화된 미국 사회 분위기를 녹여냈다. 아작 제공 출처 Richard Wilkinson original illustration for limited edition Little Brother (novel by w:Cory Doctorow) CC BY-SA 2.0
소설 리틀 브라더의 한 장면.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디지털 기술로 감시할 수 있는 시대.대. 2001년 9•11 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감시가 강화된 미국 사회 분위기를 녹여냈다. 아작 제공 출처 Richard Wilkinson original illustration for limited edition Little Brother (novel by w:Cory Doctorow) CC BY-SA 2.0

‘리틀 브라더’는 2008년에 쓰인 소설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감시가 기승을 부리며 미국 시민의 자유가 위축된 상황을 배경으로 쓰였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의 미국 사회를 상상해서 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소설 속에서 그리는 디지털 감시 사회의 모습이 한국 사회와 그대로 겹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은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정보기관은 그런 디지털 흔적을 토대로 마커스를 비롯한 개개인을 감시한다.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시민은 신용카드로 버스, 지하철, 택시 요금을 결제한다. 그 흔적만 모으면 몇 시에 어디서 승차해서 하차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의 폐쇄회로(CC) TV와 수많은 자동차에 달려 있는 블랙박스 카메라는 어떻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온갖 곳에 숨어 있는 감시 카메라는 지금도 시민의 일상생활을 낱낱이 촬영 중이다. 그런 감시 카메라 여러 대를 이용하면 한 개인의 하루를 고스란히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다.

‘리틀 브라더’의 설정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다. 정보기관, 테러 집단, 특정 기업 등 어떤 세력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감시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그렸던 감시 사회가 21세기에 현실이 된 것이다. ‘리틀 브라더’는 바로 그런 세상의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 사이의 힘겨루기를 다루는 이야기다.

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발행•472쪽•1만4,800원

이런 이야기를 창조한 코리 닥터로우도 문제적 작가다. 그는 SF 작가이기 이전에 세계적인 정보 보호 공유 운동가이다. 이런 개인사를 염두에 두면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 기업과 시민 사이의 긴장 관계를 날카롭게 포착한 ‘리틀 브라더’ 같은 소설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리틀 브라더’와 같은 주인공의 속편 ‘홈랜드’는 미국 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013년, 닥터로우는 미국 정부의 치부를 담은 비밀 문건을 공개하려는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 ‘홈랜드’를 발표했다. 얼마 후에 에드워드 스노든은 정보기관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민을 감시해온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 정부를 피해서 도피하던 스노든의 손에 들린 책이 바로 ‘홈랜드’였다. 그나저나, ‘리틀 브라더’의 마커스와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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