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설치된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조형 작품. 필자가 촬영했다. 인디애나는 1970년 고향인 미국 인디애나를 필두로 세계 주요 도시에 설치한 ‘LOVE’ 연작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지난 3월 마지막 주말에 홍콩 아트바젤(Art Basel)에 갔다. 컨벤션센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작품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조형물 앞에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2018)의 ‘LOVE’다. 작년에 타계한 그가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70년대 초반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영화 ‘러브스토리’를 기억할 것이다. 에릭 시걸(Eric Segal)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의 표지는 인디애나가 제작한 ‘LOVE’를 차용하여 디자인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1965년 뉴욕근대미술관 MoMA(Museum of Modern Art)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크리스마스카드 디자인이었다. 디자인이라고는 캔버스를 가득 채운 LOVE! 이것뿐이다. 네 글자는 정확히 화면의 4분의 1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계산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공간 어디에도 사랑의 여백이나 낭만의 여지는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간결한 문자의 강렬한 메시지 

로버트 인디애나는 미국의 팝아트 작가로 1961년경부터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일찍이 간판이나 상표 등의 상업디자인이 지배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속성을 인식하고, 현대문명에서 디자인이 갖는 폭발적인 힘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문자와 상업디자인을 이용한 그래픽디자인 방식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강력한지를 이 작품을 통하여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인디애나는 극단적으로 간결한 표어문자로 문학적인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는 기하학적 작품을 주로 만들었는데, 문자라는 간결명료하고도 추상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분명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가 과감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를 통하여 사람들의 일반적 의사소통 수단과 보편적인 경험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보면 인디애나는 ‘민주적인 예술가’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면은 예술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을 높여준다.

인디애나는 가령 ‘EAT’ ‘DIE’와 같은 단어를 교통표지판과 같은 간결한 패턴에 집어넣은 작품을 통해서 ‘먹는다’ ‘죽는다’ 같은 단어가 의미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나 본능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런던에는 재미있는 이름의 식당이 있다. ‘EAT.’라는 식당이다. 특정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먹는다‘는 일반 동사를 대문자로 쓰고 다음에 ‘.’를 찍은 것이다. 보통 논쟁이나 증명을 할 때, 어떤 주장이나 명제를 쓴 후 피리어드(마침표)를 찍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 혹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라는 의미이다. 이 식당의 간판은 ’여기서 먹어보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결한 문자 속에 강렬한 상업적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평면과 입체로 다양하게 변주된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표작 ‘LOVE’는 1965년 크리스마스카드 디자인으로 처음 탄생했다. 1973년 미국 우정국은 이 디자인을 담은 우표를 제작했는데 3억장 이상 발매될 만큼 인기를 얻었다.
 ◇팝아트와 경제학의 공통점 

인디애나의 ‘LOVE’는 사랑을 아름답게 혹은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단지 사랑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어서 오히려 의문의 여지를 없애버리는 작품이다. 인디애나의 이러한 접근은 경제학자들의 방법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에서 유독 방법론에 있어서 자연과학에 가까운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경제학이 ‘사회과학 중의 여왕’(Queen of Social Sciences)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첫째로 학문체계에서 개념의 정의(definition)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루는 대상과 개념을 ‘잘 정의(定義)’하는 일은 바로 과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개념을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가령 정치학적 개념인 권력(power)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민중사회학에서 다루는 ‘민중’의 개념이 무엇이고 그 주체는 어떤 계층인가? 정의 내리기 어렵다. 인문학 분야에서의 개념은 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진리나 선(善) 같은 철학적 개념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더 나아가 신학이나 예술에 이르면 개념 정의를 거의 포기해야 한다. 인간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는 신(神)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아름다움이나 사랑 같은 개념은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반면에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개념이나 용어들, 가령 분자, 세포, 빛 등은 그 개념의 정의를 모든 자연과학자들이 똑같이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없다. 학문의 과학적 체계의 발전은 이처럼 기본적 개념과 용어가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토양 위에서 가능하다. 경제학은 이런 점에서 자연과학과 비슷하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소득, 저축, 경제성장, 자본 등과 같은 용어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두 번째 기초 개념의 측정가능성(measurability)의 문제를 보자. 자연과학의 원자나 분자는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 같은 개념은 측정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권력을 결정하는 요소들, 가령 부존자원, 관료조직의 효율성, 인구수, 군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또 예술에서 창조력의 원천인 사랑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 가능할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의 개념들은 그렇지 않다. 즉 국민총생산, 자본량, 저축, 가계소비 등 모두가 측정가능하다. 그 이유는 측정 단위(unit)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다루는 개념들이란 거의 모두 ‘화폐’라는 측정단위에 의해서 잴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 혹은 사랑을 잴 수 있는 단위란 없다.

셋째로 이런 측정가능성 때문에 학문체계를 수리화(數理化) 및 계량화가 가능하다. 계량화와 엄밀한 수학적 방법은 보다 정치(精緻)한 이론을 정립하는데 필수불가결을 요소이다. 경제학은 그러한 이유로 보다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을 갖는 학문이다.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생전 모습. 2009년 미국 메인주 바이널헤이븐의 작업실에서 촬영했다. AP 연합뉴스
 ◇경제학자들의 ‘사랑 방정식’ 풀이 

그렇다면 경제학자는 사랑의 개념을 경제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모든 행동에 계산적인 합리성을 부여하는 경제학자는 사랑의 행위를 어떻게 보는가? 시카고대학의 베커(Gary Becker) 교수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이란 ‘개인의 효용수준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나, 효용수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타인에 대한 사랑 혹은 이타적 행위를 자신의 이기적 효용수준에 포함시켜서 일반화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이처럼 분명한 개념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지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John Nash)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해보면 좋을 것이다. 내쉬는 1994년 노벨상 시상식에서 이렇게 소감을 피력한다. “내가 평생 동안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나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비스러운 사랑의 방정식’(mysterious equation of love)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게임이론에 입각하여 협상에서의 최적 균형상태, 소위 내쉬적 균형(Nash Equilibrium)을 수학적으로 완성한 천재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엄밀한 정의나 논리를 뛰어넘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더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인디애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LOVE’라는 작품을 통해서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사랑을 사전적(辭典的) 정의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랑이 주는 여유와 기대, 그리고 환상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있다. 어쩌면 요즘 사랑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서도, 또 일본 동경의 한복판에서도, 그리고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딱딱하고 삭막한 도심의 빌딩 숲에서 마주치는 인디애나의 이 조형물은 거리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특히 사각형 디자인과 격자구도는 건축적인 안정감을 주며, 따뜻한 붉은색과 차가운 푸른색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붉은색과 푸른색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동어반복적인 정의 같지만, 인디애나는 그것은 ‘Love’라고 말한다. 이 말은 명사이며 동시에 ‘사랑한다’는 동사이기도 하다. 얼마나 명백한가!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병서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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