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처럼 중력이 센 곳에선 나이를 덜 먹을까.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버지 조셉 쿠퍼가 블랙홀 근처 행성에서 1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7년의 시간을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 쿠퍼는 할머니로 변한 딸(머피)을 만나게 된다. 그가 블랙홀 인근 행성에서 3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구에선 23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장소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 같은 설정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상대성이론을 통해 강한 중력은 빛을 휘게 만들고, 이러한 중력장(중력이 영향을 미치는 공간) 속에선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4년 뒤인 1919년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 빛이 휘는 것을 관측, 처음으로 검증했다. 지구보다 표면 중력이 28배 큰 태양의 시간은 지구보다 50만분의 1초 느리게 간다는 연구도 있다.
초대형 블랙홀 ‘M87’의 관측에 성공한 유럽남방천문대의 10일 발표는 이런 블랙홀의 신비를 밝히는 시작점이 될 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지구에서도 중력이 센 곳은 약한 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지나간다.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1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고도가 높아 중력이 약할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면에서 33㎝ 높이에 있는 시계가 지면에 있는 시계보다 10경분의 4초 정도 빨라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이 79년을 산다고 할 때 지상에서 33㎝ 높은 곳에 살면 900억분의 1초만큼 나이를 빨리 먹게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블랙홀은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별의 소멸 속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1월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블랙홀 질량이 측정된 은하를 중심으로 별의 생성ㆍ소멸 과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질량이 같은 별이라도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질량이 큰 은하에 속한 별이 더 일찍 생기고 빨리 소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결과는 지난해 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됐다.
같은 해 4월엔 블랙홀이 우리 은하에만 약 1만개가 있을 거란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형 블랙홀 ‘궁수자리 A*(Sgr A*)’에서 3광년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작은 블랙홀 12개를 찾아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Sgr A*는 이번에 최초로 블랙홀(M87)의 모습을 관측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가 집중적으로 살펴본 블랙홀 중 하나다. Sgr A는 궁수자리(Sgr)에서 발견된 가장 밝은 전파(파장이 긴 빛)를 내는 천체라는 뜻이고, ‘*’ 표시는 이 천체가 블랙홀로 추정된다는 뜻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999년 쏘아 올린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이들 블랙홀은 지구에서 약 2만7,000광년 떨어져 있으며, 질량이 태양의 약 400만 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진은 우리은하의 중심 면적과 블랙홀의 분포를 수학식으로 계산, 우리은하에 1만개의 작은 블랙홀이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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