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의 전쟁' 휴대폰 발열 어떻게 잡나
첫사랑과 밤새 통화하다 뜨거워진 볼 때문에 휴대폰을 반대쪽 귀에 갖다 대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예전, 성능이 조금 떨어지던 휴대폰을 쓰던 때 얘기일 뿐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에 말씀. 요즘 나온 최신 스마트폰을 쓰다가도 종종 겪는 일이다.
음성통화만 가능했던 1세대(G) ‘벽돌폰’은 2G 피처폰으로 넘어오면서 문자메시지와 아주 느리지만 인터넷 접속 임무를 수행했다. 3G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급증하며 진정한 모바일 시대가 열렸고, 4G에선 각종 멀티미디어가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그마저 넘어선 5G 시대다. 스마트폰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 초고용량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기기가 됐다. 그만큼 동시에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부하가 걸릴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휴대폰도 조금만 과부하가 일어나면 뜨거워지는 다른 전자기기들과 다른 게 없으니 말이다. 표가 나지 않을 뿐, 휴대폰은 항상 ‘열’(熱)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휴대폰도 과로하면 열 받는다
발열의 주요 원인은 기기의 모든 기능을 제어해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서 찾을 수 있다. AP는 반도체 핵심 부품인 트랜지스터로 구성돼 있는데, 트랜지스터에 전류가 흐르면서 전자들이 충돌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동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AP는 더 많은 일을 처리하도록 개발돼 왔다. 우리도 한번에 너무 많은 일을 벌여 놓으면 집중력과 효율성이 저하되듯 AP도 마찬가지다. 웹서핑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 스트리밍 등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요즘 스마트폰은 계속 ‘열이 받아 있는 상태’가 된다. 열이 점점 뜨거워지면 곧 성능 저하로 이어지게 되고 게임이나 멀티태스킹 화면이 버벅거리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그 때는 사용자들이 열을 받게 되는 것이다.
초기 스마트폰 시대까지만 해도 열을 내뿜는 ‘방열시트’를 부품을 붙이는 걸로 해결이 가능했다. 한데 당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바로 ‘히트 파이프’다. 2013년 일본 제조사 NEC가 스마트폰 ‘마이더스X’에 처음으로 히트 파이프를 장착시켰고, 빠르게 대세로 자리잡았다.
◇당신의 휴대폰 안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히트 파이프는 구리로 만든, 물이 흐르는 관이다. 세로로 길쭉한 모양인데 AP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생소하기만 한 이 구리관이 바로 스마트폰이 과하게 열 받지 않도록 해 주는 핵심 장치다.
구리는 물보다 온도가 더 빠르게 오르고 쉽게 내려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1g 물질을 1도 올리는데 필요한 열량을 ‘비열’이라고 하는데, 물은 1㎈인 반면 구리 비열은 0.09㎈에 불과하다.
AP가 슬슬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구리관이 달아오르면서 재빨리 물에게 온도를 전달한다. 구리로부터 열을 전달받는 물은 뜨거워지다 결국 기화하게 된다. 기화된 수증기는 낮은 온도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덜 더운 곳을 찾아 구리관을 타고 이동한다. 낮은 온도 환경에 다다르면 수증기는 열을 방출하며 다시 액화되고, 이 물은 다시 온도가 높은 곳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이 자동으로 반복되면서 발열을 막아주는 것이다. 사용 중인 휴대폰 안으로 물이 흘러야 하고, 만약 물길이 막히면 휴대폰은 열을 받아 뜨겁게 된다.
◇핵심은 수증기 이동을 더 넓고 빠르게
히트 파이프도 진화하고 있다. 초반에는 엄지 손가락 절반만했다가 점차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카메라, 지문인식 등 각종 센서가 더 많이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공간의 열을 흡수하고 방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속 길이를 늘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히트 파이프 때문에 휴대할 수 없는 기다란 휴대폰을 만들어 팔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스마트폰 사용 시간 급증 등 발열 요인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앱애니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 스마트폰 이용자의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은 3시간으로 조사됐다. 스마트폰 한 대가 일 년 중 45일을 일 초도 쉬지 않고 일하는 셈이다. 여기에 대용량 배터리, 최신 AP 등을 탑재하는 5G 상용화는 히트 파이프보다 막강한 방열 성능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5G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찾은 대안이 ‘베이퍼 체임버’다.
베이퍼 체임버는 ‘갤럭시S10 5G’와 ‘V50씽큐 5G’에 들어가 있다. 히트 파이프가 길쭉한 선 단위로 열을 확산한다면 베이퍼 체임버는 이보다 표면적이 넓고 들어가는 물의 양도 많다. 면 단위로 열을 확산하면서 온도 조절 능력이 한층 강화됐다는 게 제조사들 설명이다. V50씽큐 5G에 들어간 베이퍼 체임버의 경우 ‘V40씽큐’에 탑재된 히트 파이프보다 면적이 2.7배 넓고 물의 양은 두 배 더 많다.
LG전자 관계자는 “히트 파이프는 일자 모양의 관을 따라서만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하나의 큰 방의 개념이라면, 베이퍼 체임버는 이동할 수 있는 방들이 미로처럼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방에서는 수증기 이동이 제한되는 반면, 베이퍼 체임버에선 수증기가 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라며 “방열 완화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수증기가 더 빠르고 많은 공간으로 움직여 줘야 하기 때문에 5G 시대 들어서는 베이퍼 체임버 탑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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