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관여하고 재판 기록을 무단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이 첫 재판에서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과 출석요구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박남천)는 10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연구관의 1차 공판준비기일을 겸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관련 의견을 들었다. 이날 출석 의무가 없는 유 전 연구관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유 전 연구관 측 변호인은 “검찰의 출석요구권이 아무런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규정된 것은 위헌”이라며 형소법 200조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요구했다. ‘검사는 수사에 필요할 때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고 규정한 형소법 200조가 피의자 신문의 횟수나 시간을 제한하지 않아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변호인은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도록 한 형소법 312조 또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수십년간 당연하다는 듯이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했지만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도 검사의 조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헌법재판소가 2005년 4대4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 충분히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공소사실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피고인을 기소할 때 공소장에 법원에 선입견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등을 첨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변호인은 “검찰이 신청한 증거에 공소사실과 관련성 없는 증거가 많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재판 절차상 공소사실 범위와 공모관계 등에 대한 기재만으로는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고 반박했다 “정상적인 법리 주장 차원이 아니라 공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로 의심된다”면서 “위헌심판 제청은 매우 이례적인 주장이고 공판 진행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 연구관은 대법원 수석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할 당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등을 무단으로 들고나온 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파기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의료 비선’ 관계자의 개인 특허소송을 돕기 위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재판 관련 정보를 청와대에 전달한 혐의도 있다.
2차 공판준비기일은 2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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