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대서양 무역전쟁’이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 거대 경제권까지 충돌할 경우 지구촌 경제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따른 공포감이 국제금융시장에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EU의 유럽 항공기업체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를 거론하며, 그에 대한 보복으로 110억달러(약 12조5,000억원) 규모의 EU산 제품에 관세폭탄 부과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세계무역기구(WTO)는 EU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이 미국에 불리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판정했다”면서 “EU는 수년간 무역에서 미국을 이용했지만 그건 곧 중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검토에 들어간 관세 부과 목록에는 헬리콥터부터 치즈까지 여러 산업부문이 망라돼 있다.
그러자 EU도 미국 정부가 보잉사에 지급한 보조금을 근거로 들며 즉각 보복관세 준비에 착수했다.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보복관세를 결정하기 전에 WTO에 중재를 요청할 계획이지만 언제든 보복관세를 취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EU 간 관세 충돌 가능성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는 물론 독일ㆍ영국ㆍ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정부가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는 전체 무역협상과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하락폭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양측 간 전면전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EU로까지 전선을 확대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사실 양측 간 무역전쟁 가능성은 지난해부터 현실화했다. 미국이 EU산 철강ㆍ알루미늄에 최대 25%의 관세를 매기자 EU도 미국산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정면 충돌했다. 다만 새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하면서 확전은 피했지만 미국이 공산품ㆍ서비스 시장 뿐만 아니라 농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까지 요구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미ㆍEU 간 통상 갈등이 본격화할 경우 주목되는 건 중국의 태도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후 EU와의 거리 좁히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이 EU 편을 들 경우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대충돌 양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이 마무리되기 전에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의중을 드러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국유기업인 중국항공기리스(CALC)그룹의 보잉 737맥스 기종 100대 주문 취소, 해당 기종의 운항 중단과 관련한 동방항공의 소송 제기 등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대미 정책 방향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관세 폭탄을 예고한 날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EU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3년 만에 끌어낸 것도 상징적이다.
물론 대서양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과 EU 간 갈등은 새로운 긴장의 시그널이기 보다 에어버스 보조금과 관련한 문제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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