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들이 인사발령에 따라 형사ㆍ민사ㆍ행정 사건을 다양하게 맡을 게 아니라 아예 형사사건만 전담하도록 하는 ‘형사전문법관’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법원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형사 사건에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식으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주장이다. 다만 형사사건만 전담하는 법관이 등장할 경우 검사ㆍ변호사와의 유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형사전문법관은 8일 열린 전국법관회의에서 안건으로 등장하면서 사법행정 옴부즈만 제도 등과 함께 사법행정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제도로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사ㆍ소년사건을 주로 다루는 가정법원이 가사ㆍ소년 전문법관을 두는 것과 비슷하게 형사전문법관을 운영하자는 취지다.
형사재판을 오래한 판사들은 해당 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피고인의 신체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형사재판은 민사재판에 비해 절차적 엄격성이 강하게 요구되는데, 장기간 집중적으로 이를 진행하다 보면 절차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져 재판 진행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증거 등 새로운 증거기법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절차적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형사사건을 오래 맡은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2년마다 민ㆍ형사를 번갈아 이동하는 지금의 인사시스템 하에선 절차를 익힐 때쯤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현실”이라며 “재판장의 절차적 숙련도가 높아지면 사실심이 보다 세심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도입된 가사ㆍ소년 전문법관제도는 재판의 전문성 향상과 절차개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대법원은 2년씩 형사와 민사를 순환하던 법관 인사운용 방식에서 5∼6년간 형사재판에만 집중하는 방안을 구상하기도 했다.
형사전문법관을 두면 비슷한 사건임에도 판사마다 달라지는 ‘널뛰기 형량’에 대한 비판과 지적 또한 잦아들 수 있다. 지금도 죄명별로 형량의 범위를 정한 양형기준이 있긴 하지만 판사 재량에 따라 벌금형과 실형이 갈리고, 심지어는 유무죄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형사전문법관을 거친 이들이 많아지면 사건별 양형 차이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 일각에서는 실효성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검사와 유착이나 변호사 로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주된 반대 논리다. 형사만 다루다 보면 검사와 심리적 유대감이 생길 수 있고, 형사전문 변호사 등이 친분을 이용해 로비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든 형사 사건을 서로 맡으려 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형사전문법관 자리를 채우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의 한 법원 판사는 “재판부 변동 없이 한 분야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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