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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쌀국수 성지서 벌어진 ‘포 띤 vs 포 띤’ 원조 대결

입력
2019.04.11 04:40
수정
2019.04.11 07:3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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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쌀국수 ‘포 띤’ 

1979년 하노이 시내 로 덕(Lo Duc) 거리에 생긴 쌀국숫집 ‘포 띤’의 쌀국수. 포 띤 제공
1979년 하노이 시내 로 덕(Lo Duc) 거리에 생긴 쌀국숫집 ‘포 띤’의 쌀국수. 포 띤 제공

요리가 문화를 반영한다면, 베트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 쌀국수(Phoㆍ포)다. 1980년대 개혁ㆍ개방정책, ‘도이머이’(쇄신)가 도입된 뒤 베트남에서도 신흥부자 계층이 형성됐지만 쌀국수 만큼은 여전히 빈부차이를 떠나 모든 베트남 국민을 상징하는 ‘중립 음식’이다. 길에서 먹든 호텔에서 먹든 쌀국수는 쌀국수. 만민의 음식인 것이다.

 ◇권력서열 4위 “길거리 쌀국수가 진짜 맛” 

지난 3월 26일 베트남 공산당과 당대당 협력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쌀국수를 굉장히 좋아해서 오늘 아침에도 호텔에서 쌀국수를 먹고 나왔다”고 밝히자, 맞은 편에 앉았던 쩐 꾸억 브엉 공산당 상임서기는 이렇게 받아 쳤다. “쌀국수는 호텔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먹는 게 진짜 맛이다.” 베트남 최고 권력그룹인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당(국가권력) 서열 4위인 브엉 서기의 발언은 시장경제 아래서도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베트남 정치를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의 정식 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실제로 베트남 요리의 상징과도 같은 쌀국수는 배고프면 언제 어디서나 한 그릇씩 마시다시피 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에 가깝다. 한 뼘 높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간편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완벽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집집마다 맛은 달라도, 소ㆍ돼지ㆍ닭 뼈와 생강, 양파, 계피 등 스무 가지에 가까운 식자재로 우려낸 국물에 쌀로 만든 부드러운 면과 고기를 얹어 내는 것은 비슷하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3대째 쌀국숫집 ‘포 띤’(Pho Thin)을 운영하고 있는 부이 찌 탄(29)씨는 “식사는 물론 간식으로도 훌륭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며 “오후 1시부터 두어 시간씩 휴업하지 않으면 힘들어서 장사를 못한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음식이란 뜻이다.

1955년 하노이 시내 호안끼엠 호숫가에 처음 문을 연 같은 이름의 ‘포 띤’이 지난 2월 북미 정상회담 당시 각국 기자들에게 제공한 쌀국수. 포 띤 제공
1955년 하노이 시내 호안끼엠 호숫가에 처음 문을 연 같은 이름의 ‘포 띤’이 지난 2월 북미 정상회담 당시 각국 기자들에게 제공한 쌀국수. 포 띤 제공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쌀국숫집 이름 ‘포 띤’ 

베트남의 대표 관광지이자, 하노이 여행 외국인들의 성지와도 같은 호안끼엠 호수 동편 어느 ‘골목’에 자리잡은 ‘포 띤’은 1955년 문을 열었다. ‘띤씨네 쌀국수’ 정도로 해석되는 이 식당은 식민지배하던 프랑스를 디엔비엔푸 전쟁에서 이기고 베트남이 독립한 이듬해에 탄씨의 조부, 부이 찌 띤(1928-2001)씨가 창업했다. ‘용’(Thin)의 해에 태어난 그의 이름을 딴 ‘포 띤’ 쌀국수는 깊고 담백한 특유의 맛 덕분에 인기를 끌었고, 그 이름을 딴 국숫집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을 뜻하는 ‘띤’이라는 이름이 어디 그의 조부뿐이랴. 1979년에는 그로부터 남쪽으로 1.5㎞ 떨어진 로 덕 거리에 응우옌 쯔엉 띤(67)씨가 그 자신의 이름을 딴 또 다른 ‘포 띤’을 개업했다. 그 역시 용의 해인 1952년에 태어났다. 같은 이름의 쌀국수집 ‘포 띤’이 인기를 끌면서 ‘포 띤’이라는 이름의 쌀국숫집은 현재 현지 언론이 확인한 것만 35개가 넘는다. 두 띤씨가 자식과 친척들에게 분점을 내 주기도 했지만, 프랜차이즈 형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같은 이름으로 성업 중인 것은 이례적이다. 탄씨는 “개업 50주년이던 2005년 ‘포 띤’이라는 이름을 상표 등록했지만, 허사였다”며 “‘호수 옆 포 띤’ 또는 ‘포 띤 1955’로 차별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쌀국숫집 ‘포 띤’은 담백함으로 요약되는 하노이 쌀국수의 대명사.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남부 호찌민시(옛 사이공)에도 같은 이름을 내걸고, 고기와 쪽파를 함께 올려 내놓는 식당들이 더러 발견된다. 그러나 두 ‘포 띤’ 모두 호찌민시에 있는 ‘포 띤’은 자신들과 관계가 없는 곳들이라고 확인했다. 베트남 남부 쌀국수는 한국인 입맛에는 약간의 신맛이 특징인데 이들 식당들은 하노이 스타일 쌀국수에 대한 남부 수요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북미 정상회담 미디어센터에 식당에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응우옌 응옥 투(왼쪽)씨가 기자들에게 쌀국수를 내고 있다. 바오모이 캡처
북미 정상회담 미디어센터에 식당에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응우옌 응옥 투(왼쪽)씨가 기자들에게 쌀국수를 내고 있다. 바오모이 캡처

 ◇베트남 대표 쌀국수의 ‘본격 대결’ 

사회 곳곳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박하기 때문인지, 한국처럼 ‘원조’에 목을 매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이 두 ‘포 띤’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감지된다. 베트남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외국인 손님이 늘면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게 대표적이다.

1955년에 문을 연 ‘호수 옆 포 띤’은 지난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베트남 정부가 운영한 국제미디어센터(IMC) 내 취재진을 위한 구내식당 한 켠에 자리를 잡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 쌀국숫집 홍보를 맡고 있는, 탄씨의 아내 응우옌 응옥 투(29)씨는 “해외서는 우리 ’포 띤’이 더 유명하다”며 “전통의 쌀국수 맛을 각국 언론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정 서비스’는 예년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당시 띤을 인터뷰한 책 ‘아버지의 바이올린’(정나원)에 따르면 2001년 베트남-프랑스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한 행사에서 포 띤은 인민위원회로부터 (프랑스) 귀빈들에게 쌀국수 한 그릇씩을 내줄 것을 요청 받았지만, 사양했던 곳이다.

40년째 ‘포 띤’을 직업 운영하고 있는 응우옌 쯔엉 띤씨가 가게 앞 간판들 붙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띤씨 제공
40년째 ‘포 띤’을 직업 운영하고 있는 응우옌 쯔엉 띤씨가 가게 앞 간판들 붙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띤씨 제공

1979년에 생긴 포 띤은 이후 한국 내 베트남 노동자들과 한국인들에게 베트남 전통 쌀국수를 제공할 목적으로 응우옌 쯔엉 띤씨가 직접 2009년 한국으로 건너가 비법을 전수, ‘포 탕’(Pho Tang) 이라는 쌀국숫집을 열어준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일본 도쿄에 ‘포 띤’(Pho Thin)을 열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띤씨는 “개업날 가게 앞으로 생긴 긴 줄을 보고 놀랐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통 쌀국수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트남 언론도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하노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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