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젊은 여성 인터넷방송 진행자(BJ)가 논두렁으로 걸어 들어간다. 목에는 빨간 스카프를 둘렀고 주황색 블라우스에 흰색의 짧은 치마를 입어 영락없는 봄철 행락객 차림이다.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헤집고 다니다 푹푹 빠지는 통에 두 손과 발에는 진흙이 잔뜩 묻었다. 그가 보여준 건 이게 전부다. 하지만 이 BJ는 12일간의 행정 구류 처분과 함께 벌금 1,000위안(약 17만원)을 물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은커녕 그 흔한 욕설이나 비속어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스카프에 있었다. 중국 쓰촨(四川)성 쯔궁(自贡)시 룽(荣)현 공안국은 지난 8일 “애국열사와 소년선봉대의 명예, 인민의 애국감정을 심각하게 모독했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홍링진(红领巾)으로 불리는 빨간 스카프는 중국 소년선봉대의 상징이다. 특히 붉은색은 숭고한 희생으로 조국을 지킨 인민영웅과 혁명열사의 피를 기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BJ 탕(唐)씨는 지난달 28일 검거됐다. 동영상을 녹화한 남성에게는 훈계 조치가 내려졌다. 인터넷에서 해당 동영상은 바로 삭제된 상태다. 당국은 탕씨가 지난해부터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주로 농지에서 민소매 차림으로 동영상을 촬영해왔다며 덩달아 그의 노출도 문제 삼았다.
온라인 공간은 들끓었다. “자업자득이다”, “빨간 스카프는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BJ가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밥줄을 끊어야 한다”는 등의 격앙된 반응이 넘쳐났다. 더구나 쓰촨성 한쪽에서는 산불로 소방관 30명이 목숨을 잃어 애통함에 젖어있는 사이 다른 쪽에서는 BJ가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으로 비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물론 “어릴 적에 빨간 수건으로 탁자를 닦았는데 지금이라도 자수해야 하나”, “이게 뭐가 노출이냐” 등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지만 좀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이처럼 붉은색, 국가 등 애국심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는 마케팅이나 언행은 중국에서 요주의 대상이다. 국민 단합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9월 산둥(山東)성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나눠준 빨간색 수건에 회사 광고를 실었다가 시장감독관리국에 적발돼 34만4,700위안(약 5,86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1월에는 차량 뒤편 번호판에 빨간색 보자기를 매달고 다니던 남성이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팔로워가 4,000만명이 넘는 중국의 대형 인터넷 스타 리거(莉哥)가 생방송 도중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중국 국가(國歌)인 의용군행진곡을 흥얼거리다 국가법 위반 혐의로 5일간 철창에 갇히기도 했다. 1년 가까이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곳곳에 상처를 입은데다 경제성장률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나눠줄 당근이 넉넉지 않은 터라 여론의 결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중국이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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