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여년만에 야심 차게 부활시킨 ‘공중보건장학제도’가 정작 모집인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지역의 공공보건분야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해 의료공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현장에서 외면 받으면서 정부의 공공의료인력 육성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공중보건장학제도 시범사업’에 지원한 인원은 총 9명에 그쳤다. 올해 선발예정 인원(2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복지부는 지난 2월부터 전국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생 모집에 나섰지만 마감일인 지난달 22일까지 단 8명이 신청했고, 이달 5일까지 진행된 추가 모집 지원자도 1명에 그쳤다. 공중보건장학생으로 선발되면 매년 정부로부터 2,040만원(등록금 1,200만원ㆍ생활비 840만원)을 2~5년간 받는 대신 지원받은 기간만큼 졸업 후 지방의료원 등에서 공공보건의료업무를 맡아 일해야 한다. 정준섭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우선 1학기는 이들 9명을 대상으로 면접 등을 거쳐 최종 장학생을 선발하고, 이르면 다음달부터 2학기 모집을 시작해 당초 목표였던 20명을 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1977년부터 20여년간 장학생 1,461명을 배출했으나 지원자 감소와 공중보건의사(대체복무) 증가로 사라졌던 공중보건장학제도를 다시 도입한 배경에는 비수도권의 의료공백이 있다. 국내 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역과 공공의료분야 인력은 공보의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처지다. 2017년 기준으로 100병상 당 의사인력 수는 종합병원 17.5명인 반면 지역거점공공병원은 11.13명에 불과하고, 공보의를 제외하면 8.3명에 그칠 정도다. 그러나 의대에 진학하는 여학생이 증가하고 현역병 군복무 기간 축소로 36개월짜리 공보의 대신 현역 입대를 선택하는 의대생이 늘면서 공보의 숫자는 2010년 5,179명에서 2017년 3,620명으로 급감했다.
공공의료 인력난에 직면한 정부는 공중보건장학생 제도를 부활시키고 지원금액을 키우는 등 신청을 독려했으나 의대생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강원도에 있는 한 의과대학에 다니는 양모(23)씨는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고 열악한 지방에서 일하느니 대출을 받았다가 종합병원에 들어가 갚는 게 낫다”고 했다.
공중보건장학제도의 미달 사태를 봤을 때 정부가 내놓고 있는 공공의료강화를 위한 교육정책 자체의 실효성에 의심이 간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조중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은 “엑스레이 장비 하나 없는 취약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혈압약이나 소화제 처방 뿐”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설립을 앞둔 공공의료대학원에도 지원할 인력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공의료기관의 열악한 진료 환경 개선과 더불어 의대생들을 공공의료로 끌어들일 유인책을 찾아야 비로소 공공의료 기피 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준섭 과장은 “산간벽지에 무작위 배치를 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 장학생은 원하는 지역에서 거점병원 역할의 지방의료원에서 전공을 살려 일하게 된다”면서 “단순한 장학금 지원이 아니라 공공의료를 살리는 ‘지역의사’라는 진로 모델로 홍보를 해나간다면 지원자가 더 나올 것이라 본다”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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