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해양 국가들이 유럽에 단단히 뿔났다. 350년 유럽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60년 만에 경제적 선전포고를 단행하는 모양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무역 보복 등 압박 수위를 높이더니 급기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정상까지 나섰다. 팜오일 때문이다.
9일 로이터통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팜오일 사용 규제에 항의하는 서한을 7일 유럽연합(EU)에 발송했다. 양국은 EU 의회가 있는 브뤼셀에 자국 입장을 공식 전달할 대표단까지 파견했다. 루훗 판자이탄 인도네시아 해양조정부 장관은 서한의 구체적 내용을 함구하면서도 “양국 정상이 함께 작성해 서명했다, EU 계획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팜오일 세계 1, 2위 생산국(85%), EU는 팜오일 최대 수입시장이다. EU는 팜오일이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보고,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방안을 지난해 6월 의결한 바 있다. 팜오일 농장이 늘어난 1990년 이래 인도네시아에서만 열대 우림 31만㎢가 사라졌고, 원주민들의 주거지도 위협받고 있다는 게 EU 논리다. 일부 환경단체는 대규모 팜오일 농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쯤 되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입장에선 팜오일 가격 급락 등으로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국가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루훗 장관은 "인도네시아에서만 1,760만명의 소규모 자작농이 팜오일 생산에 관여하고 있다"라며 “팜오일 퇴출은 이들을 다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팜오일이 대두유 등 다른 식용유지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많아 환경 훼손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팜오일만 문제 삼는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환경도 고려하고 있다”고 억울해한다. 실제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질서한 산림 파괴를 막기 위해 지난해 ‘팜오일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런 호소에도 EU가 꿈쩍하지 않자 양국은 반격의 공세를 높여 가고 있다. 콜롬비아 등 동맹군도 모집하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 유럽 배제(말레이시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인도네시아), WTO 제소(양국) 등 구두 경고에 이어, 최근 인도네시아에선 유럽 양주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연간 계획을 세워 주류를 수입하는 인도네시아에선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유럽 주류업계는 인도네시아의 보복으로 보고 있다. 실제 멕시코 테킬라 등 비(非)유럽 주류 제품들은 정상적으로 수입 승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입 제한 조치를 부인하고 있다.
팜오일 분쟁이 ‘제국주의 간섭 대 경제 주권’ ‘환경 파괴 확대 대 원주민 빈곤 초래’ 등 복잡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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