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자 신분을 노출시켜 협박에 시달리게 하고, 심지어 공익신고 받은 사안을 자신들의 수사실적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2008년 정권 차원에서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몰아낼 때는 과도한 공권력을 투입해 사장 축출을 엄호하기도 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9일 공익신고자 보호에 문제가 있다며 경찰에 재발방지책을 촉구했다. 지난해 2월부터 본격 활동에 돌입한 조사위는 과거 사건 가운데 부당하게 처리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들을 진정 형식으로 접수, 수사 내용과 절차상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안을 촉구하는 기구다.
/그림 1민갑룡 경찰청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익신고자 A씨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의 병원장이 의료법인 명의를 빌려 병원을 세운 걸 알아채고 퇴사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고했다. 한 달 뒤 관할 경찰서가 수사를 벌이면서 문제가 터졌다. A씨는 익명으로 자신을 보호해달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경찰은 진술조서에다 A씨 인적 사항을 그대로 노출시켰을 뿐 아니라, 그 조서가 증거로 제출된 법정에서도 거리낌 없이 A씨 실명을 공개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제보자를 찾아낸 병원장이 지속적으로 협박하자 A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은 “아직 신원이 공개된 게 아니니 걱정 말라”는 황당한 대답만 내놓은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회단체에 근무 중 보조금 1억4,000만원이 부정하게 쓰였다고 신고한 B씨도 수사기관의 무성의한 일처리에 고통 받았다. B씨는 수사과정에서 자신이 쓴 익명의 제보편지를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해달라 했으나 그냥 노출시켰다. 불안한 마음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자 “실명제보 때만 요청할 수 있다”며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공익신고자 C씨는 아예 자신의 신고가 경찰의 수사실적으로 둔갑한 경우다. 일하던 회사의 부정을 알게 된 C씨는 이를 관할 경찰서에 몰래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은 ‘정식 신고하면 검사 수사지휘를 받아야 한다’며 공익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했다. C씨는 자신의 신고를 눈치 챈 회사 사장의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관련 정보를 다 경찰에 넘겼다. 몇 달 뒤 수사결과 발표까지 나왔으나 그 이후 경찰은 아무 말이 없었다. 3년 뒤에야 C씨는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공적을 가로챘다”는 C씨의 주장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또 2008년 8월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KBS 임시 이사회에 7개 중대 규모의 사복경찰관기동대를 투입한 것은 과도했다고 판단했다. 조사위는 “공영방송사 내부 문제는 1차적으로 방송사 자율에 맡기고 경찰의 투입은 최후적, 보충적으로 이뤄져야 했는데 경찰이 그랬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사에 경찰력을 투입할 때는 책임소재 등을 분명히 짚을 수 있도록 관련 지침 등을 정비하고 되도록이면 사복 보다는 제복을 착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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