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회의 기자에서 마을의 기자로,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본보에서 사진기자로 재직했던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자신의 대표작 '아! 나의 조국' 앞에 서 있다. 영월=이한호 기자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어 잘 지내? 박물관 한번 놀러 와!”

인근 초등학교 학생의 발랄한 인사를 우렁찬 목소리로 받아준 한 남자. 선명한 눈빛에 흰색, 회색, 검은색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친근한 학생부터 처음 보는 꼬마 숙녀에게까지 도통 낯을 가리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이 남자는 어느 목요일 오후, ‘기자 체험’ 부스에 앉아 있지 않았어도, 누가 봐도 기자다.

그러나 어느덧 ‘기자님’이란 호칭보다 ‘선생님’, ‘관장님’이란 호칭이 더 익숙해졌다. 사진기자로 31년을 살아온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인생 2막을 찾아 귀촌한 지 어언 9년째. 이제 그는 온전한 마을 주민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6월 민주항쟁의 대표 사진 ‘아! 나의 조국’을 찍은 전설적인 사진기자에서 강원도 영월군의 선생님, 관장님, 그리고 ‘마을 사진기자’가 되기까지, 고 관장은 이런 2막의 열쇠가 ‘지역사회’라고 한다.

본보에서 사진기자로 재직했던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된 취재 완장들 앞에 앉아 있다. 영월=이한호 기자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은 입학하는 학생이 없어 폐교된 지 20년이 지난 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서 있다. 고 관장은 한때 초등학교였던 이곳이 “마을공동체가 함께하던 소중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기자는 역사의 파수꾼”이라고 말하는 그는 “한 가정이든, 한 마을이든 모두가 소중한 공간이자 우리들의 역사”라며 이곳(박물관)을 지키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신이 “사회적 현상을 기록하는 기자”에서 “마을을, 가족을 기록하는 기자”가 됐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파수꾼인 거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역사는 죽은 역사라고 하던가. 고 관장은 이 공간이 ‘역사가 있었던 곳’이 아니라 ‘역사가 계속해서 쓰이는 곳’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한때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었던 학교. 학교라는 기능을 상실한 지금도 이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숨결로 가득 차도록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문화 활동을 진행한다.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강원 영월군 석정여자중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사진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박물관 직원들이 함께 만든 마을 신문을 학생들과 함께 보고 있다. 영월=이한호 기자

대표적인 것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취재를 해 만드는 마을신문이다. 마을의 사건들을 엮어 완성된 신문을 만들며 주민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직접 기록한다. 본래 마을신문은 격월에 한번 발행되지만, 영월국제박물관포럼이 열렸던 날에는 당일 취재한 기사를 바로 신문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고 관장은 “이렇게 당일신문을 만든 것은 학술행사 최초일 것”이라며 주민들과의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반드시 ‘미디어’나 ‘기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좋다.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에서는 솟대를 만들거나 난타 공연 등을 배우는 ‘마을 속 문화’ 프로그램을 농어촌희망재단과 함께 운영한다. 강원도 전통음식을 만드는 농촌 동아리인 ‘광전줌마’ 역시 미디어, 기자와 전혀 관련 없지만 박물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국가에서 지역 문화생활을 위해 예산을 편성해도, 이를 따오기 위한 행정절차가 지역 주민들에게는 큰 장벽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는 그는 “정부 사업 등을 여러 번 추진해본 박물관이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인구 특성상 연령대가 높고 정보접근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지기에 박물관이 본연의 전시·기록 역할을 넘어서야 진정한 지역사회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강원 영월군 영월교육지원청 진로체험행사 기자체험 부스에서 학생들에게 안전모와 카메라를 들려주고 있다. 고 관장은 부스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직접 촬영한 기념사진을 인화해서 나눠줬다. 영월=이한호 기자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강원 영월군 영월교육지원청 진로체험행사 기자체험 부스를 방문한 학생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 관장은 부스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직접 촬영한 기념사진을 인화해서 나눠줬다. 영월=이한호 기자

물론 지역사회에 진정으로 편입되려면 박물관장으로서만 머물 수 없다. 박물관 밖에서의 활동에도 적극적인 이유다. 박물관 밖에서 하는 활동 중 특히 공을 들이는 것은 지역 학생들을 위한 활동이다.

서울에서는 거주민들의 파편화로 지역사회가 무너져간다면 지방에서는 다음 세대를 이을 어린이들이 없어 지역사회가 무너진다. 그는 “영월은 전국에서 인구 소멸이 두 번째로 빠른 도시”라며 “마을 학교의 이번 졸업생은 3명, 입학생은 2명”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어르신을 위한 문화시설에만 투자하고 당장 일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중장년층 유치만을 위해 노력한다면 지방은 살아남을 수 없다.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다 해도 지역에 애정을 갖고 자라날 어린 세대를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제작한 인근 지역 학교들의 졸업앨범. 영월=이한호 기자

그렇기에 고 관장이 가장 애정을 갖고 진행하는 활동은 인근 학교들을 위한 졸업앨범 재능기부다. 8년째 인근 학교 졸업앨범을 제작해 준다. 그는 그것이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이라고 믿는다. 처음에 1개 학교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11개 학교의 졸업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올해까지 그 숫자를 13곳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기자가 영월을 방문한 날도 고 관장은 강원교육지원청 주관 진로체험학습 부스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딱딱하게 “기자는 이런 직업이야”라고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한 장의 추억을 선물하려고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강원 영월군 영월교육지원청 진로체험행사에서 기자체험 부스를 열었다. 고 관장은 부스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직접 촬영한 기념사진을 인화해서 나눠줬다. 영월=이한호 기자

고 관장은 지난해부터 지역아동센터와 인근 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 선생님으로서 학생들과 직접 만나며 교육자로서의 삶도 시작했다. 미디어기자박물관의 ‘기자 체험’ 부스를 지나며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지방 농촌은 학생 인구가 줄어들어 위기지만, 오히려 이를 차별점으로 삼을 수 있어요. 대도시에서 불가능한 1대 1 교습이 가능하다는 점을 살려 바로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이나 그 도시만이 갖는 색, 문화를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죠. 다른 지역들이 이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그는 “대안학교의 개념을 농산업 학교에 접목시키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도시 환경에 맞춰진 교육 체계에서 벗어나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민주화 항쟁 당시 촬영했던 사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월=이한호 기자

이제는 지역사회에 통달한 원로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도 이 마을이 처음이었을 때가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인생 2막을 꿈꾸며 귀촌을 그리는데, 고 관장은 이들을 위해서 딱 두 가지를 당부한다. 내려놓음과 나눔.

“많은 귀촌, 귀농인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 입은 채 촌을 떠나는 사례를 많이 봤어요. 말로는 모두 ‘계급장을 떼고’ 과거를 뒤로하고 온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더불어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가 세우는 기준’이 아닌 ‘우리가 세우는 기준’을 잣대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내려놓고’ 마을에 동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서 지역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실패 일화도 들려줬다. “미디어기자박물관이 들어서기 전 폐교 건물은 원래 책 박물관이었어요. 나름 좋은 생각으로 ‘책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 거죠. 그러나 책마을이라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 아닌 박물관이 중심이었기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어요.”

수십 년을 갈고닦은 자신의 능력은 ‘내려놓음’의 대상이 아니라 ‘나눔’의 대상이다. 그는 “귀촌, 귀농, 귀향하는 사람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바로 평생을 해왔던 일에 대한 나눔”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 졸업앨범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부지런히 찍는다.

물론 인생 2막을 찾아서 하나 둘씩 내려오는 귀촌인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순 없다. 책 박물관의 예를 들며 고 관장은 귀촌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반이 너무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서 귀촌을 장려하는데, 이에 대해 도시에서 백날 강의해봤자 실리가 없다”는 것이다. 고 관장은 “귀촌 희망자는 인턴십 하듯이 며칠씩 내려와서 살아보고, 다양한 라이프 사이클도 가져보며 서서히 적응하고,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귀촌인들과 현지인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귀촌인의 능력이 쓰일 수 있게 필요한 곳과 연결해주고, 현지인들과 불화가 있을 때는 골이 깊어지기 전에 중재해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해요. 농촌도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하지 못한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겠죠.”

본보에서 사진기자로 재직했던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자신의 대표작 '아! 나의 조국'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월=이한호 기자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 4일 자신의 대표작인 '아 나의 조국!' 앞에 서 있다. 과거 고 관장이 사용하던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촬영한 모습. 영월=이한호 기자

말처럼 쉬운 길이 아니겠지만 안정적으로 귀촌에 성공한 고 관장은 요즘 삶이 한 단어로 ‘해피니스’라고 한다. “내 인생 2막의 가치관은 쉼표와 마침표입니다. 마감시간에 쫓기던 삶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으로 넘어왔어요. 천천히 쉼의 시간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어요. 마침의 시간도 스스로 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귀촌인의 행복입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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