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치러진 태국 총선 결과의 공식 발표가 한 달이나 남았지만, 예상 밖으로 선전한 것으로 알려진 군부정권의 야당 탄압이 벌써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일부 야당 인사를 4년 전 ‘사건’을 끄집어내 고소하는가 하면,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을 갑자기 바꿔 야당들에 돌아갈 의석 수를 줄이려 시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껄끄러운 인물을 표적으로 삼아 당선 무효조사를 벌여 아예 선거 결과를 뒤엎으려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8일 현지 영문 일간 더 네이션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군부정권 연장에 반대하는 야당 연합체인 ‘민주전선’의 하원(500석) 다수당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대표 의석 기준으로 돌연 변경, 총선에 참여한 25개 이상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고루 배분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원의 비례대표 의석 150석의 할당 기준은 당초 ‘최소 7만표 이상 득표 정당’이었으나 이번에 ‘3만표’로 하향 조정됐다. 이에 따라 의회 진입이 불가능했던 군소정당들이 대거 의회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바뀐 기준에 따라 의석 배분이 이뤄질 경우 탁신계 푸어타이당이 주도하는 민주전선의 예상 의석은 당초 255석의 절반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정치평론가 P씨는 “군부의 야당 탄압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며 “국민들이 군부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 국민들의 군부 정권에 대한 반감은 또 다른 야당인 퓨처포워드당을 이끌고 있는 타나톤 중룽르앙낏 대표에 대한 군부의 ‘조준사격’이 시작되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다. 군부정권 최고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는 지난 3일 ‘폭동선동 혐의’로 타나톤 대표를 고소한 바 있다. NCPO는 고소장에서 군부 쿠데타 발발 이듬해인 지난 2015년 군부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운동가가 경찰의 추격을 뚫고 도주할 당시 타나톤 대표가 자신의 차량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부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인 선관위가 지역구 선거 당선자 66명에 대해 결과에 따라 당선 취소도 가능한 조사에 착수한 것도 야당 탄압의 또 다른 수단이다. 조사를 받는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상당수가 당선 자격을 박탈당한다면 현재 137곳에서 승리해 지역구 의석 1위를 달리고 있는 푸어타이당은 최악의 경우 군부정권 정당인 팔랑쁘라차랏당(97석)에 밀릴 수도 있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선관위가 민주전선 측 당선자들에 대해 대거 ‘당선무효’ 판정을 내려 반군부 세력의 하원 다수당 구성을 저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익명을 요구한 태국외신기자클럽(FCCT)의 한 전직 임원은 “태국 군부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며 “태국에서 또 다른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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