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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별세… 하늘길 개척자, 하늘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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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별세… 하늘길 개척자, 하늘로 떠나다

입력
2019.04.09 04:40
수정
2019.04.09 07:1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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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제적 투자로 ‘글로벌 대한항공’ 키워… 가족 갑질 논란ㆍ경영권 박탈 수모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중훈 선대회장의 창업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이어받아 45년간 한진그룹에 몸담으며 한국 항공산업을 이끌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지병인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조 회장은 1969년 8대의 항공기로 출범한 대한항공을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전세계 43개국 111개 도시에 취항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시키는 등 우리나라 항공물류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물컵 갑질’ 등 가족들의 행태가 사회적 논란이 됐고, 탈세 등 각종 비리 혐의로 사정기관의 전방위적인 조사를 받으면서 말년은 순탄치 못했다. 특히 지난달엔 그룹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한진그룹에 따르면 조 회장은 이날 새벽 0시1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들이 조 회장의 임종을 지켰다. 조 회장은 지난해 연말 미국으로 출국했고, 폐질환으로 수술 받은 후 회복했다가 최근 지병이 다시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사장 등 3남매는 조 회장 건강이 악화되자 곧바로 미국에 건너갔다”며 “운구 및 장례 일정과 절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1949년 인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정비와 자재, 기획,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를 두루 익혔다. 그는 사무실이 아닌 현장을 누비는 스타일의 ‘실무형’ 경영자로 평가 받는다. 취항지를 결정할 때 기업 총수로서 서류 보고만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사전 답사를 다녔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2001년 9ㆍ11 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잇따라 터진 악재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구조조정, 항공기 주문축소 등 긴축 경영을 할 때 조 회장은 오히려 보잉787, A380 등 항공기 도입 확대에 나섰다. 향후 경기가 회복될 때 항공기를 제 때 들여오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진짜 위기로 본 것이다. 조 회장의 예측 대로 2006년 세계 항공시장이 회복되자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FSC)와 저비용항공사(LCC) 간 경쟁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2008년 진에어를 창립하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별도의 LCC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왔다”고 평가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약력_김경진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약력_김경진기자

조 회장은 국적 항공사 오너로서 쌓은 글로벌 인맥을 바탕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도 수행했다. 2014년부터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으로 양국 경제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한-불 최고경영자클럽’의 한국 측 회장으로 활동하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을 후원하는 등 문화적 교류에도 기여했다. 이 공로로 그는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여받았다.

조 회장은 여수 엑스포 유치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도 지원했다. 특히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지구 16바퀴에 해당하는 64만㎞를 돌며 34개의 해외 행사에 참여해 유치 활동을 벌였다. 2012년 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와 부인 이명희씨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며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조 회장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여식이 미숙한 행동을 저지른 데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의 퇴진 압박을 받았고, 지난달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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