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활동가들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의 활동가들. 왼쪽부터 제이(한국여성민우회), 이유림ㆍ나영(성과재생산포럼), 문설희(사회진보연대). 홍인기 기자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한다. 더 정확히는 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와 270조에 대한 판단이다.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만이다.

여성계는 벌써 들썩이고 있다. 7년 전 합헌 결정 당시에도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 4라는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이후 여러 논쟁이 오가면서 낙태를 둘러싼 여러 문제의식들이 그만큼 더 널리 퍼졌다.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국가기관도 위헌 의견을 냈다. 이 때문에 이번엔 헌재가 아예 위헌 결정을 내리거나, 최소한 국회에 형법 개정을 촉구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이라도 내놓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 활동가 나영ㆍ문설희ㆍ제이(이상 공동집행위원장), 이유림(집행위원)씨를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모낙폐는 2017년 9월 여성ㆍ인권 등 23개 단체가 한데 모여 결성한 단체다. 낙태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2016년 여성계가 검은 옷, 검은 모자, 검은 장갑으로 무장한 채 항의집회를 열었던 ‘검은 시위’가 계기였다. 모낙폐는 결성 이후 헌재 앞에서 집회를 계속 이어나가며 낙태죄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낙태죄 폐지’ 못지 않게 ‘폐지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참석자들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 선고일이 11일, 코 앞이다. 어떻게 전망하나. 

나영= “2010년부터 지금까지 9년 동안 낙태죄 폐지 운동에 몸담아왔는데 이번에는 특히 느낌이 좋다. 전향적 결정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리에서 체감하는 국민의 인식이 이전과 사뭇 다르다. 2012년 헌재 결정 당시만 해도 ‘낙태죄’의 존재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임신 중지 처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재생산 권리와 여성의 건강권, 더 나아가 생명권을 위협한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 여론의 대세가 확실히 폐지 쪽으로 기운 것을 피부로 느낀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낙태죄 폐지 집회를 열었는데 우박이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5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에 나와 뜻을 모아줬다. 정부는 물론, 헌재도 달라진 여론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2017년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낙태죄 폐지 청원은 순식간에 23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후 정부 태도에 실망했다던데. 

문설희=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하지만 국민청원에 대한 대답과 그 이후 행보는 실망스러웠다. 조국 민정수석은 국민청원에 대답하면서 이혼, 투병,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여성 문제를 언급했는데, 이건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여성에게만 예외적으로 임신 중지를 허용한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완전히 잘못된 접근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언제든 박탈당할 수 있다는 건,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여성의 보편적 문제다. 또 ‘낙태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해보겠다’고 했는데, 어쩐지 국가가 적극 나서기보다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둔한 모습이었다 생각한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의 활동가들. 왼쪽부터 제이(한국여성민우회), 이유림ㆍ나영(성과재생산포럼), 문설희(사회진보연대). 홍인기 기자
 -낙태 ‘죄’만 폐지하는 게 아니라 여건도 뒤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제이= “맞다. 임신 중지는 무려 66년간 범죄였다. 우리나라의 임신 중절 의료 기술은 전세계 최하위 수준일 수밖에 없다. 당장 처벌조항이 사라진다 해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된다. 산부인과 전문의조차 임신 중절 관련 지식을 알음알음으로 배운다고 한다. ‘큐렛’이라는 날카로운 도구로 자궁 내막을 긁어내는 ‘소파술’은 아주 낡은, 수십 년 전 시술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의사들이 이 방법을 쓴다. 지금부터라도 관련된 정보와 기술을 산부인과 의사 등에게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산부인과의 인프라도 지역별 격차가 매우 크다. 지방에는 분만실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유림= “유산 유도 약물인 미프진(미페프리스톤ㆍ미소프로스톨) 수입, 유통부터 허용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안전성을 인증했으며, 국가가 국민 건강을 위해 반드시 구비해야 할 필수의약품 리스트에까지 올려뒀다. 몇 가지 원칙만 잘 지킨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약이어서 유럽에서는 산부인과 전문의뿐 아니라 일반 의사들도 이 약을 처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로서는 여성의 신체에 가장 피해를 덜 끼치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수술적 방법보다 의료비가 낮기 때문에 의료 접근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보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합법화하는 게 시급하다. 임신 중단 시술에 의료 보험이 적용돼야 함은 물론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임신 12주, 18주, 24주 등 시기별로 낙태 허용 여부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12주까지 허용하는 독일과 프랑스 방식이 자주 언급되는데. 

문설희= “주수에 따른 허용 방식은 처벌 가능성을 남겨둔다는 뜻이다. 굳이 기준을 따로 두지 않아도 임신 중지를 선택한 여성의 80% 이상이 12주 안에 결정을 내린다. 주수 규제를 두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정이 늦어진 여성을 보호할 수 없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 더더욱 늦어지기도 한다. 주수에 따른 규정을 두지 않아도 여성은 각자의 여건에 맞게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나영= “또 한가지 점은 해외 사례를 한국 상황에 바로 대입할 순 없다는 점이다. 유럽의 시행착오를 꼼꼼히 봐야 한다. 일례로 프랑스는 2015년 ‘숙려기간제’를 폐지했다. 숙려기간 동안 오히려 안전한 임신 중단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생겨서다. 2001년에는 ‘청소년의 부모 동의 의무 조항’을 없앴다.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한 청소년들이 불법 시술로 내몰려서다.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기에 앞서 이런 맥락을 섬세하게 검토해야 한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를 열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낙태죄 폐지 반대쪽에선 저출산 문제를 거론하며 차라리 피임 교육을 강화하고 비혼모를 지원하자는 대안을 내놓는다. 

이유림= “여성이 아이 낳을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임신 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처벌한다는 건 국가의 책임 회피다. 30~40년 전만 해도 ‘가족 계획’이란 명목으로 국가가 낙태를 사실상 강제해왔다. 이제 저출산이 문제가 되자 임신 중단 여성을 비난하는 것이다. 낙태죄에 ‘저출산’ 문제를 들이대는 건 여성의 몸을 ‘국가의 재산’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원치 않는, 계획에 없는 임신으로 갖게 된 아이도 어떻게든 낳게 해 ‘개체 수’를 늘리겠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제이= “피임교육, 비혼모 지원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100% 완벽한 피임은 없으며 미혼ㆍ비혼 뿐 아니라 기혼 여성도 임신 중단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낙태죄 폐지와 함께 고민해볼 문제이지, 그게 대안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또 임신 중지 허용을 태아의 생명권 침해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생명이란 단순히 태어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하는 게 아닐까.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지킬 권리 또한 생명권의 일부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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