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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생산 합리화 고민을 담은 존재, 1923 타입 153 BR 토르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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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생산 합리화 고민을 담은 존재, 1923 타입 153 BR 토르피도

입력
2019.04.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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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타입 153은 생산 효율성의 고민이 담긴 모델이다.
푸조 타입 153은 생산 효율성의 고민이 담긴 모델이다.

1810년, '푸조형제 회사(Peugeot-Frère et Compagnie)가 탄생했다.

이 회사는 장 피에르 푸조 2세(Jean Pierre Ier Peugeot II), 장 프레데릭 푸조(Jean Frédéric Peugeot)가 설립한 회사로 냉간 압연 방식으로 톱과 시계 부품, 시계 기구 및 각종 생활 용품을 시장에 내놨다. 이후 푸조형제 회사는 재봉틀과 공구 박스, 우산 프레임 등 다양한 생활 용품을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89년, 푸조는 증기기관 차량 전문가인 레옹 세르폴레(Leon Serpollet)의 기술 지휘 아래 푸조의 첫 번째 자동차 ‘세르폴레 푸조(Serpollet-Peugeot)’를 발표하며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897년 푸조 자동차(Societe Anonyme des Automobiles Peugeot)를 설립하며 푸조 자동차의 자체 개발 및 생산을 시작한다.

생산성을 고민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각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생산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저마다 생산 공정을 효율적으로 줄이거나 투자되는 비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과 연구를 반영해 새로운 생산 공정을 적용한 타입 153가 1914년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생산 합리화 및 최적화 시스템을 적용하며 전체적인 생산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참고로 타입 153에 적용된 생산 공정은 포드 모델 T와 가장 유사한 방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만나다

1914년 4월, 푸조는 1913년 하반기부터 접수 받았던 계약 물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의 반응이나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타입 153이 데뷔한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푸조 측에 타입 153의 군용 사양의 생산을 요청했고, 푸조는 타입 153에 생산 속도를 높이고 내구성을 강조한 타입 153 A를 제작해 정부 측에 납품했다.

타입 153 A의 등장 덕분에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타입 153는 '고유의 존재'를 지킬 수 있었다. 대다수의 자동차 공장들이 소형 트럭, 트럭 생산으로 뱡향을 틀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엔진의 변화를 겪다

전쟁 이후 푸조는 엔진의 배기량을 키워 타입 153의 주행 성능을 개선하고, 더욱 우수한 견인력을 강조했다. 실제 1920년 이후에 데뷔한 다양한 타입 153들은 각각 2.8L 사양과 3.0L 사양의 엔진을 탑재해 주행 성능을 한층 개선했었다.

제주도에서 만나는 타입 153

제주도에 위치한 제주 푸조·시트로엥 박물관에 전시 중인 1923 타입 153 BR 포르피도는 토르피도 타입과 코치빌더를 통해 제작되는 쿠페 드 빌, 리무진 사양의 바디 타입을 갖고 있다.

1922년부터 1923년까지 짧은 기간 생산된 만큼 전세계 적으로 276대만이 생산되었으며 3.0L(2,951cc)의 4기통 엔진과 4단 변속기를 조합해 최고 80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차량이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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