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항공 물류사업을 통해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1949년 3월8일 인천에서 아버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항공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
고 조 회장은 2003년 2월14일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회장 취임 당시인 2000년대 초반은 항공산업에 있어 크나큰 위기였다. 2001년 9ㆍ11 테러, 2003년은 이라크 전쟁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잇따라 터진 악재 속에서 전 세계 항공사들은 구조조정, 항공기 주문 축소 등 최대한 움츠린 경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고 조 회장은 이와 같은 항공산업의 위기를 오히려 항공기 도입의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나중에 경기가 회복될 때 맞춰 항공기를 제 때 들여오지 못하게 되는 미래를 진정한 위기라고 봤다. 대한항공은 2003년에는 A380 초대형 차세대 항공기를, 2005년에는 보잉787 차세대 항공기 도입을 연이어 결정했다.
이와 같은 조양호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세계 항공 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항공사들은 앞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항공기 제작사가 넘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항공기 도입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적시에 차세대 항공기들을 도입한 대한항공은 이를 토대로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여갈 수 있게 됐다.
2018년 기준 대한항공 매출액은 12조6,512억원으로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회장 취임 전 해인 1998년 매출 4조58,54억원보다 3배 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자산 또한 1999년 7조8,015억원에서 24조3,94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보유 항공기 대수는 113대에서 166대로, 취항국가 및 도시 숫자는 27개국 74개 도시에서 44개국 124개 도시로 성장했다.
해운회사인 한진해운 역시 장기적 세계 해운 불황 속에서도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매출이 2배 넘게 늘어는 실적을 거뒀다. 한진은 2003년 매출 6,153억 원을 거뒀지만 2017년에는 매출 1조6,117억 원을 내며 회사의 외형을 성장시켰다.
고 조 회장의 경영 스타일
고 조 회장은 생전 부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유훈을 강조했다. 그는 사무실이 아닌 현장을 누비는 스타일의 ‘실무형’ 경영자였다. 취항지를 결정할 때 그룹 총수로서 보고만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사전답사를 한다. 허름한 숙소에서 자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18일 동안 6,000마일(9600km)을 손수 운전하며 미국 곳곳을 살펴본 일화로 유명하다.
국적 항공사 오너로서 재계에서 가장 폭넓은 대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아 미국과 경제교류의 가교역할을 역했다. 한국과 프랑스 관계에도 기여했다. 고 조 회장은 ‘한-불 최고경영자클럽’의 한국 측 회장으로 활동하며 화학, 신소재 분야 등에서 두 나라의 공동연구와 개발협력을 추진했다. 또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을 후원하는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에도 앞장섰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여 받았다.
국제 인맥을 활용해 여수 엑스포 유치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지원했다. 특히 2009년 9월부터 2011년 7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까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지구 16바퀴 거리인 64만㎞를 돌며 34개의 해외 행사를 소화했다. 2012년 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2014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준비에 힘썼다. 2016년 5월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기까지 후원사 유치와 조직 정비 등 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 받는다.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탁구 종목을 지원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도 맡았다. 2018년 세계선수권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파산
다만 한진해운 대표를 맡아 회사를 살리고자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2017년 결국 파산을 맞았다. 2014년 세계 해운업의 불황으로 한진해운이 유동성 위기를 맞자 제수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한진해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조양호가 경영을 맡았다. 조양호는 한진해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한진해운에 2조2,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직접적 자금지원으로 손실을 본 것은 물론이고 주가와 신용등급이 일제히 하락했다.
한진그룹의 에쓰오일 지분을 처분해 1조원을 투입했고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참여로 6,600억 원을 조달했다. 한진, 한진칼에서도 4,000억 원을 웃도는 자금을 한진해운에 집어넣었다. 한진해운과 채권단은 자구안을 놓고 여러 달에 걸쳐 줄다리기를 하다가 채권단이 추가지원을 거부하면서 한진해운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2017년 2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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