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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화용 헬기 157대, 강풍ㆍ야간에 띄울 헬기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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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화용 헬기 157대, 강풍ㆍ야간에 띄울 헬기는 '0'

입력
2019.04.07 17:25
수정
2019.04.07 23: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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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산불’ 재난대응 시스템 문제 노출]

초속 25m 강풍에도 운항하는 헬기, 작년엔 예산 확보 못해 도입 미뤄져

비정규직 특수진화대 처우 개선 시급… ‘발화 위험’ 전신주 보수ㆍ관리도 허술

6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주민들이 산불에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주민들이 산불에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4일부터 사흘간 동시다발적으로 타올라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와 맞먹는 산림을 쑥대밭으로 만든 강원 고성ㆍ속초ㆍ강릉 옥계 산불은 정부의 신속한 물량공세로 다행히 대형참사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신속한 사후 대응과는 달리 허술한 초기 대응과 노후 장비 등 재난 대응 시스템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산불진화용 헬기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허술한 전신주 관리, 턱없이 부족한 산불대응 인력 등 수십년간 지적된 해묵은 문제점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노후장비로 아날로그 식 대응 여전

강원소방본부 관계자는 7일 “야간에 띄울 수 있는 헬기만 있었어도 4일 오후 고성 토성면 전봇대 개폐기에서 발생한 불을 초기에 잡을 수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지난해 초속 25m의 강풍 및 야간ㆍ혹한 속에서도 운항이 가능한 러시아제 카모프 대형헬기 구입을 위한 국비 예산확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는 얘기였다. 최문순 강원지사 역시 “대형 다목적 헬기가 도입되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봄철 산불이 연례행사가 됐음에도 현재 강원소방본부가 보유한 헬기는 구조용 소형헬기 2대뿐이다. 전국적으로 산불진화에 가용할 수 있는 헬기는 산림청 소속 47대와 지자체가 민간인으로부터 임차한 66대 등 157대지만, 이마저 정비에 들어가는 헬기가 적지 않아 화재 진화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특히 이번처럼 해가 지고 난 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출동할 수 있는 헬기는 사실상 전무하다. 일각에서는 야간침투비행 능력을 갖춘 일부 군 헬기를 활용하면 야간 진화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작전용 헬기를 용도에 맞지 않는 곳에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때문에 초기 진화에 실패한 이번 산불이 고성 천진해변과 속초시내 등 두 갈래로 퍼졌음에도 ‘아날로그 식’ 대응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산골마을인 강릉 옥계의 경우도 펌프차량 등 노후장비와 주민들로 이뤄진 의용소방대로는 파죽지세의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속절없이 방어선이 무너지며 강릉은 물론 동해 망상까지 잿더미가 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5일 새벽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의용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새벽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의용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수차례 재난 겪고도 산불 감시 인력 그대로

매번 반복되는 산불 감시 및 진화인력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번 산불 진화의 숨은 영웅으로 ‘산불재난 특수진화대’가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처우는 형편이 없다.

특수진화대는 산림 분야의 전문 소방관으로 산림청이 선발해 운영한다. 산불이 나면 국ㆍ사유림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고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는 야간 진화 작업에도 동원된다. 이번 산불 현장에도 전국 특수진화대원 330명 중 절반이 동원됐다. 이들은 강풍에 헬기도 뜨지 못 하는 상황에 가장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일당이 10만원에 불과한 10개월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다. 주휴수당과 같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정수당만 있고 다른 수당은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1년마다 새로 모집돼 늘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때문에 이번 산불을 계기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 특수진화대의 전문성을 키우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분명하다”면서 산림청 예산 증액을 과제로 제기했다.

이러다 보니 가깝게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영동지역에서만 106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 축구장 1,800개에 해당하는 산림 1,263㏊를 잃고도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진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산불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이번 같은 재난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전 전신주 유지ㆍ관리도 허술

국가재난사태까지 선포된 고성 산불의 발화 원인이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건너편 전신주로 잠정 확인되면서 이를 관리하는 한국전력공사의 허술한 유지ㆍ보수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풍에 날린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전신주에 설치된 개폐기의 연결전선에 닿아 강한 불꽃이 생겼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게 한전의 원인 분석이다. 이에 대해 손원배 경주대 환경에너지방제학부 교수는 “피복이 오래 됐다면 전선에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 달라붙었을 때, 불꽃이 튈 수 있다는 한전의 원인 분석 자체가 스스로 배전시설 관리를 소홀히 해왔음을 보여주는 것”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현재 한전의 개폐기 등 배전을 유지ㆍ보수한 집행실적은 1조1,524억원으로 오히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2,386억원)나 줄었다. 자칫 대형 화재를 부를지 모를 설비 관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손 교수는 “산불 예방을 위해선 전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 작업이 필수적이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노후설비 교체 등 배전시설 관리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릉, 동해 산불의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의 주택 인근에서 경찰이 관계기관과 합동 감식을 벌였다. 연합뉴스
강릉, 동해 산불의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의 주택 인근에서 경찰이 관계기관과 합동 감식을 벌였다. 연합뉴스

◇산불원인 조사 본격화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를 휩쓸고 간 산불을 일으킨 원인조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이날 강릉과 동해 일대 산림 250㏊를 잿더미로 만든 강릉 옥계면 산불의 최초 발화점이 산중턱에 위치한 신당의 제단임을 확인했다. 경찰은 당시 신당 앞 제단에 높인 전기 초에서 불이 붙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감식중이다. 경찰은 또 전기시설이나 가연성 물질이 있었는지 감식 작업을 벌인 데 이어, 마을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수거해 발화 당시 상황을 분석 중이다.

앞서 경찰은 5일 고성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해당 개폐기와 전선을 떼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전의 관리내역은 물론 고압전선간 연결 부위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한전의 관리 소홀이 드러날 경우 관련자에 대해 업무상실화죄를 적용, 형사처벌한다는 방침이다.

또 인제 산불은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남면 남전리 약수터 인근에서 실화 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산림보호법상 과실로 인한 산불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고성ㆍ속초=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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