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연극 '비평가' 관객모임에는 이영석 연극연출가와 임승태 드라마터그도 참석했다. 관객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관객모임에 참가한 이들은 "관객들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될 것 의견"이라고 말했다. ‘비평가’ 관객모임 제공

얼마 전 서울 당산동의 복합문화공간에 연극 팬 30여명이 모였다. 지난 2월 재공연을 마친 연극 ‘더 헬멧’을 두고 저마다 이야기를 풀어냈다. ‘더 헬멧’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2017년 시리아 내전을 겹쳐 풀어낸 작품. “극 중 시고니는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걸 각오하고 소신껏 정의를 따르잖아요. 연극계 미투 운동을 보면서 저도 객석에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이어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참석자의 발언에 다른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달 전태일기념관 개관작으로 공연된 음악극 ‘태일’로 주제가 옮아갔다. 노동자 권리 투쟁 문제가 분위기를 달궜다. 주제를 넘나드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더 헬멧’을 만든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극연출가가 곁에서 귀를 기울였다. 약 5시간 이어진 모임은 더없이 뜨겁고 진지했다.

연극계에 새로운 관객 문화가 등장했다. 이른바 ‘관모(관객 모임의 줄임말)’이다. 극단과 공연장이 주최하는 ‘관객과의 대화’와 형식은 비슷하지만, ‘관모’는 관객들이 직접 기획한 모임이라는 점에서 출발선이 다르다. 서로 일면식이 없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매개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창작진을 초대해 소통한다. 작품 감상 소감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연극계는 물론 사회가 나아갈 방향까지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관모’의 문을 연 건 지난해 무대에 오른 연극 ‘비평가’였다. 올 1월 ‘비평가’의 관객 모임을 주최한 대학생 한지원(26)씨는 연극계의 여성 서사 부재 문제를 논의하려고 모임을 기획했다. 본래 남성 2인극으로 쓴 ‘비평가’는 지난해 여성 배우 2명이 무대에 오르는 ‘젠더프리 캐스팅’을 시도해 화제가 됐다. 한씨는 “연극이 끝난 뒤에도 여성 2인극 자체가 없는 연극계 현실을 놓고 한동안 온라인 토론이 이어졌다”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관객들과 얼굴을 보며 소통하고 싶어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관모’를 통해 관객은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담론 생산자가 된다. ‘비평가’와 ‘더 헬멧’ 관객 모임에 모두 참여했다는 진윤희(20)씨는 “관모는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민조 연극평론가는 “공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까지 확장해 이야기를 나눈다”며 “연극 담론에서 소외되거나 목소리를 찾지 못한 관객들이 당당한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당산동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열린 연극 '더 헬멧' 관객 모임. 지이선 극작가는 "질문 자체가 우리 답보다 훌륭하다"며 관객들의 좌담회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김의정 인턴기자

관객의 피드백에 목이 마른 창작진도 ‘관모’를 반긴다. ‘비평가’를 연출한 이영석 연극연출가는 “연극이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예술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김민조 연극평론가는 “문화 콘텐츠를 보다 적극적으로 즐기고 참여하는 관객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연극 관객들도 달라지는 것 같다”며 “관객 모임의 힘이 커져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관객 문화의 올바른 미래라고 본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김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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