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가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문성현(67) 경사노위 위원장이 민주노총도 언젠가는 타협과 양보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문 위원장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한국노동법학회, 한국노동경제학회 주최로 열린 ‘한국의 노동 현실과 미래’ 정책토론회에서 “작년 이맘때만 해도 상당히 희망적이고 패기 있기 인사 드렸는데 지금은 좀 풀이 죽었다”며 가볍지 않은 농담으로 축사를 시작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과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대표들의 본위원회 보이콧 등 경사노위를 둘러싼 악재에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문 위원장은 “(내가 풀이 죽어 보여도) 걱정 마시라”며 “모든 세상 일이 거쳐야 할 과정을 거쳐야 하고, 넘어야 할 벽을 넘어야 하고, 건너야 할 강을 건너야 비로소 제 갈 길을 가는 듯하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언급한 벽은 대화와 양보의 문화가 뿌리 내리지 못한 한국의 노사 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탄력근로제를 놓고 한국노총과 경총과 고용노동부가 소중한 노사정 합의를 이뤘지만 이번에 최종 본위원회에서 미조직 노동계 대표 세 분이 참석을 못해서 의결을 못한 상황”이라며 “이것이야 말로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대화는 해야 하는데 탄력근로제(단위기간 확대 합의)는 곤란하다’는 입장이 노동계 내에서 존재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성찰해야 한다. ‘나쁘다,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 왜 그런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계층별 대표 3명이 사회적 대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탄력근로제 합의에 반대 표시를 하는 것을 넘어 보이콧을 해 의결 자체를 막은 상황을 거론한 것이다. 문 위원장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화는 해야 하는데 ILO 기본협약(비준 합의)은 곤란하다’는 입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를 한다는 건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의 절박함과 절실함을 나누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노동계든 경영계든 정부든 아직 그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주고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받는 건 좋은데 주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충분치 못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해결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합의를 통해 확인한 것은 한국노총이든 경총이든, 주고 받는 것에 대한 의지와 책임은 있다”며 “이 정도만 해도 대단히 소중한 상황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민주노총도 어떤 단계를 지나면 똑 같이 할 단계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축사를 마무리 했다.
민주노총은 4일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예상과 달리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상정조차 하지 않아 한동안 경사노위 합류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 위원장은 대학생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해 민주노총 금속연맹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노동계 인사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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