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화염 폭격 맞은 전쟁터 방불… 사망자 2명
4일 건조경보와 강풍경보가 함께 내려진 가운데 강원 고성군 토성면 발생한 산불이 인근 속초시내까지 번져 콘도 투숙객과 주민 등 3,0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소방당국은 “고성군 토성면 도로에서 50대 남자 1명 등 2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불은 서풍을 따라 삽시간에 토성면 일성콘도, 국회연수원을 지나 속초시내까지 옮겨 붙으며 두 도시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시뻘건 화염에 뒤덮였다.
소방청은 고성 산불에 ‘최고수준’인 대응 3단계 발령을 내리고 전국 차원에서 소방차 출동을 지시했다. 정부는 5일 0시를 기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동해안산불방지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17분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 변압기에서 시작된 불꽃이 산으로 옮겨 붙었다. 불은 순간 최대 초속 30m에 이르는 강풍 속에 바짝 마른 숲을 태우며 순식 간에 번져 나갔다.
당국이 신고를 접수한 지 10여분 만에 소방대원 78명과 펌프차 등 장비 23대를 긴급 투입해 진화에 나섰으나 강한 바람으로 불길을 초동 진화에 실패했다. 특히 해가 진 뒤라 진화헬기가 뜨지 못해 진화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인근 일대가 금세 연기와 화염에 휩싸였다.
삽시간에 번진 불길이 원암리, 성천리 민가, 신평리 군부대, 일성콘도 앞까지 다가오자 고성군은 주민과 투숙객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주민과 투숙객 600여명이 종합체육관과 동강중학교 등지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원암리 주민 임모(48)씨는 “시뻘건 불길이 산 하나를 집어 삼킬 듯 번져나가 혼비백산 해 집을 빠져 나왔다”며 “바람이 잦아들고 해가 뜨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시간이 갈수록 불길의 기세는 더 강해져 토성면 인흥2리, 상천리 마을과 경동대, 용초리 해안부대 탄약고를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가 소방당국에 빗발쳤다. 고성 토성면에서는 수학여행을 온 평택의 현화중학교 학생들을 태운 버스 8대 가운데 2대에 불이 붙어 폭발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학생들은 폭발 전 다른 버스로 옮겨 탄 것으로 전해졌다.
강풍을 등에 업은 불길은 파죽지세로 불과 1시간여 만에 속초시내로 번졌다. 속초시는 이날 오후 8시14분쯤 바람꽃마을 연립주택, 장천마을 주민, 한화콘도 투숙객들에게 인근 청소년 수련관으로 대피하라는 긴급 재난안전 문자를 보냈다. 이후 9시10분쯤에는 속초고 기숙사까지 불이 번져 일부 학생이 연기를 마시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특히 강풍을 탄 불길은 고성 토성면과 속초 영랑호 인근에서는 식당과 민가 여러 채를 집어 삼켰고, 가스폭발로 추정되는 굉음이 울렸다는 얘기가 속속 들려오고 있다. 오후 9시를 지나자 불길이 속초시 영랑동과 교동 등 시내 도로까지 내려와 도심 골목이 화염에 휩싸였다. 교동 동부아파트 등 일부 단지의 도시가스 공급이 끊겼다. 일부 통신사 휴대폰이 먹통이 돼 주민들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속초시 영랑동의 한 주민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밤 늦게 고성에서 속초로 이어지는 도로는 물론 시내까지 불이 내려오자 조금이라도 불과 멀어지려는 피난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며 “인력이 부족해 시내도로 화단에 붙은 물을 끌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불안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숨을 쏟아냈다.
기상청은 태풍급 바람이 예보된 5일 오전까지가 이번 산불의 최대 고비로 보고 있다.
소방당국은 대응3단계를 발령해 서울 등 타 지역의 장비와 인력을 지원 받아 민가와 콘도, 가스 저장소 등지에 저지선을 치고 불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자정을 넘어서도 강풍이 잦아들지 않아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당국은 5일 날이 밝는 대로 진화헬기 23대 등 가용 가능한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앞서 이날 오후 2시50분쯤 인제군 남면 남전리 야산에서도 산불이 발생, 축구장 14개 면적의 산림이 쑥대밭이 됐다.
당국이 헬기 11대와 인력 543명을 투입,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이곳 역시 강풍을 타고 순식 간에 번지는 불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불로 남전리 일대 산림 10㏊와 컨테이너 4동이 잿더미가 됐고, 주민 17가구 35명이 인근 부평초교로 대피했다. 이날 오후 7시쯤 진화헬기 9대가 모두 철수하자 당국은 황골과 남전약수, 가로리 등지에 장비 39대와 진화대원 371명을 배치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소방청은 이날 오후 8시31분을 기해 서울과 인천, 경기, 충북 지역 소방차 40대 출동을 지시한 데 이어 추가로 전국으로 소방차 출동을 지시했다. “전국 규모의 소방차 출동 요청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소방청 관계자는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조기 산불진화를 위해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 대응하고 진화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고성ㆍ속초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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